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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지난 2월 12일 미국 의회에서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정책을 관할하는 다수의 상하원 중진 의원들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삼각동맹을 강조하는 초당적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결의안은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한·미·일 3국이 삼각협력을 통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확산, 불법행위를 중단하고 더 이상 세계 안보를 위협하지 않으며, 자유를 존중하고 인권을 지향하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들은 북한 핵 문제로 직면한 동북아 지역의 공동 안보 문제를 과거사의 갈등과 반목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사실상 결렬로 끝난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외교와 동시에 한·미·일 공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을 같이했다.

위안부 합의의 상이한 해법,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 ‘초계기-레이더’ 공방 등과 같은 최근의 이슈들을 둘러싼 한일관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은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한 국제질서를 안정화시키고 역내의 복잡한 현안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치권이 함께 키운 ‘반일’과 ‘험한’ 프레임은 양국 국민감정의 악화로 인한 악순환이 정체성 충돌의 정치화로 표출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한일관계의 위기적 상황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악화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일관계를 갈등과 대립의 시대로 방치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협력의 길을 복원시켜 한일 신시대로 열어 갈 것인가? 한일관계를 걱정하는 대다수의 국민은 후자의 물음에 대한 해법 모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악화일로의 한일관계를 타계하고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실천론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의 강화이다. 한일 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협생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한일 양국은 정상의 셔틀외교, 각료회담, 의원교류, 1.5트랙 협의체인 정책 대화 등과 같은 복합적 네트워크의 정례화가 요망된다. 이는 악화된 한일관계에 대한 반성과 과거사 프레임을 극복하고 양국 간의 대화채널을 확충하여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을 아우르는 실질 분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월 12일 누카가 후쿠시로(額賀 福志?) 일한의원연맹 회장, 코쿠다 케이지(穀田 ?二) 의원, 카사이 아키라 (笠井 亮) 의원, 오오니시 켄스케(大西 健介) 의원, 혼다 히라나오(本多 平直) 의원등이 비공식적으로 방한하여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이낙현 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을 예방하고 어려워진 한일관계를 대화로 풀려는 모습은 복원력을 높이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의 한 축이라 할 것이다.

둘째는 포퓰리즘에 만연된 언론들의 자정화 결여이다. 일본의 우익 정치인, 학자 등 일부 세력들이 한국을 보는 눈이 지나치다 못해 아예 한국은 ‘필요 없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내면서 한일관계가 파탄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일본의 산케이신문(産?新聞)은 고베대학 대학원 법학연구소의 미노하라 토시히로(?原俊洋) 교수가 ‘한국 불필요론’을 칼럼 형식으로 게재했다. 그는 한일관계 일련의 문제는 불행한 역사의 결과이지만, 그 원인은 ‘한국의 상식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 반면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진보 언론들은 뜬금없이 ‘반공=빨갱이 반대’를 ‘친일’로 규정하여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이는 친일 흔적 지우기란 명분을 통해 신한반도체제의 명분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깔려 있다. 물론 친일잔재 청산을 통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세워야 한일관계 역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변치 않지만, 정치적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무분별한 친일 흔적 지우기는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개선에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이처럼 한일관계에선 극단적인 우익적 목소리로 연결되고 있고 동시에 ‘한국 때리기’와 ‘친일=나쁜 것’이란 불안심리가 팽배한 양국 사회의 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포퓰리즘은 언론들의 자가정화 없이 분출되고 있다.

셋째는 민간교류의 확대이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여 년간 한일관계는 질적·양적으로 발전해 왔다. 양국 교역이 1000억 불 이상을 달성했던 때도 있었고, 민간교류 수가 7000만 명 이상이었으며, 운행되는 항공편 역시 주 850여 편이 될 정도로 상당히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교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일관계의 발전은 양국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 차원에서 더 많은 소통과 교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2월 1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한일경제인교류의 밤’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경제교류의 장을 넘어 정관계 모임으로까지 확대되어 관계 개선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참석자들은 한일관계가 어려울수록 민간교류를 증대하자고 입을 모았고, 이러한 민간교류 확대가 양국 간 정치외교 관계 개선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했다. 최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 때문에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혐한·반일 감정이 커지고 있다. 과거의 교류가 국가 간의 교류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는 중심에는 개인과 개인의 교류 즉 민간교류가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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