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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지난해 9월 26일 미국의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젊고 매우 솔직하며 예의 바르다”고 언급한 것 등을 거론하며 이 같은 보도를 했다.

당시는 이 통신의 보도가 국내에서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가 5개월이 지난 요즘 난데없이 국회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간에 정면충돌의 불씨가 됐다.

발단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한미 양국이 별거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별거가 언제 이혼이 될지 모른다”면서 “반미·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이제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여권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발언을 이어 가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자 여당이 폭발을 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이 발언에 흥분한 여권은 긴급의원 총회를 열고 나 원내대표를 일제히 성토했다. 이해찬 대표는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냉전체제에 기생하는 정치세력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여권의 당 중진들도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라”, “원내 대표직을 사퇴하라”는 등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국 지난 13일 민주당은 한국당 나 원내대표를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고, 한국당도 같은 날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의사진행을 방해했다며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맞제소했다. 여야가 북핵 비핵화에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판국에 ‘김정은 대변인’ 발언을 둘러싸고 이성을 잃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유치한 모습은 더 이상 국민에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한반도가 핵 위험에 빠져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도 여야는 서로 원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싸움박질만 해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본 북한의 김정은은 수하들을 모아놓고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하다.

한국 국회에서 여야가 이렇게 치졸한 정쟁을 벌이고 있는 시각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텍사스 휴스턴을 찾아 지역 방송사 5곳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북핵 문제가 미국과 전 세계에 대한 위협이다”고 전례 없는 말투로 강조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얼굴을 마주한 나에게 무려 6차례에 걸쳐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그간의 공개하지 않은 사실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해 작심한 듯 꺼낸 이 날 메시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4일 “향후 수주 내에 평양에 팀을 보내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화의 손짓을 보낸 것을 끝으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정중동의 행보에 들어간 지 8일 만에 이날 전면에 나서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 냈다. 백악관의 북핵 3인방 폼페이오, 존 볼턴, 비건이 매파로 돌아선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유엔 대북제재의 이행을 감시하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은 ‘온전(remain intact)’하며 북한이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금수 품목을 불법거래하는 등 제재위반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연례보고서를 펴낸 날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들 3인방은 지금까지 해온 대북 비핵화 정책을 180도로 바꿔 김정은의 목을 더욱 조이는 강도 높은 제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곳곳에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대가 온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유엔 대북제재의 보고서가 말해주는 의미를 문재인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북·미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언론으로부터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일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인지 일의 선후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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