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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2주가 지나면서 이유가 점차 알려지고 있다. 당시 상황을 복기(復棋)하는 것은 실패를 거울삼아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국내에서 지속되는 비생산적 책임론 공방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우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로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제시하고 상응 조치로 2016년 이후 부과된 5개의 유엔 제재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 관련 분야의 해체를 요구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영변 시설 중 무슨 시설을 어떤 방법으로 폐기하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미국은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한 제재 해제에 불가 입장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다시금 5개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의 입회하에 공동 작업으로 영구 폐기한다”는 입장을 회담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반면 미국은 ‘대타협’(a big deal, a grand bargain)의 ‘일괄타결’(a total solution)을 북한에게 요구하였다. 제시된 안에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외에도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의 폐기도 포함되었다. 미국이 언제 안을 제시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정상회담 중 확실한 미국의 입장이 전달되었다. 상응조치와 관련해서는 연락사무소, 종전선언 등이 상정되었고 제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 ‘미국 주도의 제재 전체 해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미국이 제시한 일괄타결안의 구체적 내용이다. 동 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을 추적하면 1992년 남북이 체결한 ‘비핵화공동선언’의 핵심 내용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공동선언에는 1항 ‘핵무기의 시험 제조 갱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아니하며’, 3항 ‘핵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4항‘사찰’ 등이 명시되어 있다. 동 내용과 더불어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의 폐기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괄타결이 포괄적 로드맵 합의 후 단계적 이행을 의미하는지 단계 구분 없이 북한 핵 능력을 동시에 폐기하는 방안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핵심 능력을 따로 떼어 단계별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방식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리용호 외무상이 결렬 직후 심야 기자회견에서 밝힌 “회담 과정에서 미국 측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는 언급에서 파생한다. 미국이 포괄적 일괄타결 안을 제시했음에도 ‘한 가지’로 표현한 것이 모호하다. 만약 한 가지가 영변 외에 위치한 우라늄 농축 시설이라면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 대표가 1월 31일 밝힌 연설 내용의 연장 선상에 있다. 당시 비건 대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목표를 북한의 모든 핵 재처리 시설의 폐기,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신고와 검증, 폐기의 단계로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물질 생산 능력을 중단시키려 했을 수 있다.

종합하면 미국은 핵과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망라한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모두 포함하여 논의를 진척시키기를 원한 반면 북한은 영변을 시작으로 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했다. 상응조치와 관련해서 미국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영변 하나로 핵심 제재 모두의 해제를 모색했다. 실무회담에서 이미 명확한 입장 차가 있었음에도 정상회담이 강행된 것은 양국 정상 둘 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결과이다.

결국 앞으로의 돌파구는 로드맵 작성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이 재확인된다. 비핵화의 정의를 포함한 최종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포함한 조치의 범위, 시기 등을 선상에 놓는 방법이다. 과거, 현재, 미래 핵을 동시에 또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핵심 능력부터 우선 제거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1차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집중적으로 제기되어 다양한 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당시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의 신속한 달성이었다. 이번 회담의 결렬이 로드맵의 작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예측 가능하고 신속하며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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