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에서 꽃피는 봄은 몇 번이나 더 맞을 수 있을까! 청춘이라 해도 100번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중년이면 50번도 안 될 것이다. 봄은 와락 피었다가 분분히 지고 마는 벚꽃처럼 겹겹 슬픔이 깃든 짧은 순간이어서 더욱 아름답고 간절하다. 봄은 인생의 무상이라는 골똘한 상상의 통로와 연결되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인들이 자주 마음 젖는 시절이다. 봄은 1000년 전을 살았던 중국 당송의 시인들부터 이 시대의 시인들까지 풀지 못한 슬픈 정한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금같이 귀한 봄 밤의 한 때(春宵一刻値千金·춘소일각 치천금)/ 맑은 꽃 향기에 달 그림자 어리네(花有淸香月有陰·화유청향 월유음)/ 노래하고 피리 불던 누대도 텅 비었고(歌管樓臺聲寂寂·가관누대 성적적)/ 그네 걸려있는 안뜰에 밤이 깊어간다(鞦韆院落夜沈沈·추천원락 야침침)”

970여 년 전 어느 봄밤, 안뜰의 빈 그네를 바라보고 있는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1036~ 1101년)의 ‘봄 밤이 간다(春夜行)’는 시다. 사람들은 ‘천금 같은 봄밤’이라는 첫 구절을 자주 말하지만 마지막 구절의 ‘빈 그네가 걸려 있는 안뜰’의 묘사가 더 애절하다. 달빛 어린 봄날의 창가에서 빈 그네처럼 허전한 시인, 그 마음의 쓸쓸한 안뜰이 선연히 보인다.

소동파 보다 300여 년 전의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년)은 술로 봄밤의 허허로운 적막을 달랬다.

“저무는 줄 모르고 술잔 들이켰다(對酒不覺暝·대주불각명)/ 취해 쓰러진 사이 옷 위에 수북이 꽃잎 쌓였네(落花盈我衣·낙화영아의)/ 비틀거리며 일어나 달 비친 냇가 걷다 보니(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새는 어디론가 돌아갔고 길엔 사람 그림자 조차 끊겼네(鳥還人亦稀·조환인역희)”

이태백이 쓴 ‘스스로 달랜다’는 뜻의 ‘自遣(자견)’이란 시다. 제목 자체가 철학적 화두다. 술에 취해 잠든 사이 피었던 꽃이 져서 벗어놓은 옷 위에 꽃잎 쌓였다니. 옷 위에 내린 꽃비는 술 취한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 보다 영원 속의 짧은 생명을 누리는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다. 시를 읽으면서 인적 없는 봄밤, 달빛 어린 냇물을 바라보며 허허롭게 걷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봄밤은 사내들도 눈물짓게 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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