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말 어린아이 무덤서 나와…남성성기·거북 등 표면에 새겨져
"가락국기 건국신화 금관가야 전유물 아닐 가능성…고대 가야사 연구 매우 중요한 자료"

석곽묘 출토유물인 토제방울. 위쪽부터 구지봉(남성의 성기모양), 구지가에 등장하는 거북, 관을 쓴 남자.
대가야 시대 고분군인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에서 가야 건국신화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토제방울이 출토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재단법인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은 20일 오전 고령군대가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언론브리핑을 통해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6종이 새겨진 직경 5㎝가량의 토제방울 1점과 소형 토기, 화살촉, 어린아이 두개골 편 등 유물도 함께 출토돼 주목된다.

이번에 발견된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 중 낮은 곳에서 확인된 제1호 석실묘의 경우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령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횡혈식 무덤이다.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5세기 말께 조성된 대가야 소형 석곽묘에서 나온 토제방울 1점이다. 어린아이가 묻힌 이 석곽묘 규모는 길이 165㎝, 너비 45㎝, 깊이 55㎝정도로, 조성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당시 유물의 부장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직경 5㎝가량의 토제방울에는 남성성기(구지봉), 거북(구지가), 관을 쓴 남자(구간),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그림(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선으로 새겨져있다.

각각의 그림은 하나하나가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건국신화의 내용과 부합되어 대가야 건국신화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동안 문헌에서만 나오던 건국신화의 모습이 유물에 투영되어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가락국에 아직 임금이 없어 김해 구지봉(龜旨峰)에서 신의 소리가 들려 부족장들이 모든 백성들을 구지봉에 모아 놓고 신의 계시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구지가)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후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고 이 중 가장 먼저 태어난 김수로가 금관가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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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연구원 측은 “이번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건국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이번 발굴로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신화에 담긴 핵심요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제방울에 새긴 그림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여러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증거자료로서 우리나라 고대사 특히 가야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토제방울 외에도 소형 토기 6점,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曲玉) 1점 등과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편이 함께 출토됐다.

참석한 학계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과 유물들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관한 학술정보 확대와 앞으로 대가야는 물론 모든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반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권오항 기자
권오항 기자 koh@kyongbuk.com

고령, 성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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