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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역시, 자연지진이 아니었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人災)였음이 결국 드러났다.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결과를 접하고 보니 우선 화가 치민다. 도시 전체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이유가 무책임한 정부와 장삿속만 챙기려는 기업 때문이었다니 분통이 터진다.

대한지질학회가 지난 2017년 11 월15일 역대 두 번째 큰 규모(5.4)로 발생한 포항지진이 자연 발생이 아닌 인근에 위치한 지열발전소의 영향 때문이었음을 공식화했다. 포항지진 원인 규명을 위해 작년 3월에 발족해 1년간 정밀조사를 벌인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20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자연지진이 아닌’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해외조사위원회 역시,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포항지진 본진을 촉발했다’며 결코 자연지진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님을 명백히 한 것이다.

지진 발생 이후, 인근 지역에 위치한 지열발전소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그동안 포항지진 원인을 두고 학계를 중심으로 ‘유발지진’이다, 아니다 라는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지진피해 당사자인 포항시민들은 당연히 지진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로 지열발전소를 줄기차게 지목하며 비난의 화살을 집중해왔다. 소위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에서 직접적(유발)이든, 간접적(촉발)이든 지열발전소가 지진 발생에 영향을 준 게 틀림없음이 밝혀진 만큼, 이제는 심증에 더해 물증까지 확보한 셈이다. 향후 시민들의 성난 민심이 지열발전소 건설 추진을 승인한 국가와 해당 기업에게로 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고소, 고발을 통한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고 더불어 물질적, 정신적 피해보상을 위한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이미 소송을 진행한 일부 시민들도 있지만 나머지 시민들 역시, 국가 또는 해당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 너도나도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진 발생 후 현재 포항지역엔 시민들로 구성된 여러 지진피해대책 시민단체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제각기 목소리를 내며 피해지역에 대한 보상 및 복구지원 대책을 요구해왔다. 그중에는 이번 지진원인 조사결과 발표가 있기 전부터 피해보상을 위한 소송을 진행한 단체도 있다. 향후 소송결과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과연 이렇듯 제각각 소송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의문이다. 무차별적인 소송 진행으로 소송에 참여한 시민들이 불확실한 결과에 따른 또 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로 지진피해의 원인이 지열발전소 건설 추진이라는 정부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한 것이 명백해진 이상, 소송대상은 당연히 국가일 수밖에 없다. 보다 세심한 법리적 검토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포항시민을 대표해 포항시가 직접 나서는 게 맞다. 물론 지역민을 대표해 지방정부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는 법적 검토로 따져봐야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당연히 전체 시민의 뜻을 모아 대표로 나서는 것이 여러모로 마땅하다.

우선, 물질적, 정신적 피해 정도가 다르긴 해도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가 지진피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시민 전체가 피해자인데 시가 직접 나서 챙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피해보상 소송문제는 잘못된 국가정책 추진으로 직접적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국민적 권리이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적 의도나 정치적 홍보 수단 내지는 소송대리를 자처하며 내세우는 얄팍한 상술로 인해 소송 자체가 변질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럴 가능성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가 직·간접적으로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자체의 존재 이유를 보여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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