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나라 왕 홀이 조나라를 공략했다. 조나라가 계속 밀리자 누창이란 신하가 진나라와의 강화를 주장했다. 우경이란 신하는 누창의 주장을 반대했다. “전쟁이냐, 강화냐를 결정할 수 있는 쪽은 진나라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진나라의 목적은 우리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인데 지금 패하고 있는 마당에 강화를 하자고 하면 그들이 듣겠습니까? 정말 강화를 하려면 초나라와 위나라에 환심을 사 그들과 연합해 대적하겠다는 것을 보여 줘야 강화가 성공할 것입니다.”

우경은 적국과 강화보다 우방과의 동맹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으나 조나라 왕은 우경의 간언을 묵살, 진나라에 강화 사절을 보냈다. 결과는 우경의 말대로 진나라의 침공을 받은 조나라는 멸망했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연합, 위나라를 침공했다. 위나라는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90살이 넘은 당휴라는 노신이 진왕을 설득하기 위해 진나라에 급파됐다. 진왕은 우선 90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온 당휴의 애국심에 감동했다. “폐하께서 저희 나라의 위급함을 아시면서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진과 위는 이웃한 나라로 서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위나라는 물산이 풍부한 대국이지만 진나라의 병풍(屛風)이 되고자 하는 것은 진나라가 강대해 가히 위나라가 기댈만 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병풍인 위나라를 잃게 되면 결국 진나라도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위나라는 진나라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몸을 낮춘 당휴의 겸손한 동맹외교 주장에 흐뭇해진 진나라 왕은 구원병을 보내 위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근세 유럽 외교에서 ‘비스마르크시대’를 연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동맹외교의 달인이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항상 프랑스의 위협을 받고 있는 독일은 비스마르크의 동맹외교로 프랑스를 견제했다. 비스마르크 외교의 요체는 ‘쓸데 없이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정책 엇박자로 한미 동맹의 파열음이 더 커지고 있다. 대일 관계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외교적 고립무원이 불안하다. 고집 때문에 동맹외교가 금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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