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함께 살아 돌아온 참모들에게 술자리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때 조조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했다. “봉효야! 봉효야! 어찌하여 네가 먼저 갔느냐.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낭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봉효는 조조가 애지중지하던 참모 곽가였다. 곽가의 자가 ‘봉효’였다.

곽가는 적벽대전 한해 전에 38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재사였다. 기라성 같이 즐비한 조조의 참모들 중에 조조가 가장 신임하던 참모였다. 참모들이 내 놓은 계책의 취사선택에 철두철미하게 신중했던 조조였지만 곽가가 진언한 계책은 100% 받아들였다. 유비가 제갈량의 계책을 받아들였던 것 이상으로 곽가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만약 곽가가 살아 있었더라면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에게 그렇게 대책 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책이 강동을 평정,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조조의 모사들이 손책을 두려워 했지만 곽가만은 별 볼일 없는 인물로 평가했다. “손책은 용맹하고 성정이 불 같아 금세 활활 타오르나 행동이 경솔하고 천성은 급한데, 꾀는 모자라 한낱 필부의 그릇 밖에 안 된다. 용맹하나 위엄이 없어 언젠가 소인배의 손에 죽을 것이다” 곽가의 예측대로 손책은 26세 나이로 자객의 습격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

조조에 의탁하고 있던 유비가 원술을 치겠다며 허도를 빠져나가자 조조에게 빨리 뒤쫓아 가 유비를 처치하라고 재촉했다. “유비는 새장에 가둬 두어야지 밖으로 내보내면 반드시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곽가의 예상대로 유비는 삼국을 정립, 조조와 맞서 괴롭혔다. 곽가의 예측이 정확하고 어김이 없었던 것은 그의 사람 보는 눈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 후보자 7명 전원에 대해 청문 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전원 거부는 전례가 없는 인사 망신이었다. 결국 지명철회와 자진사퇴로 2명의 후보가 낙마 ‘개각 참사’를 빚었다. 의혹 덩어리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검증 부실 책임은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에 있다. 문재인 정부엔 곽가 같은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 조-조 듀엣 수석이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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