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에 의한 궁예의 참담한 몰락은 착각 탓이었다. 궁예의 통치는 신권정치적 요소를 가미한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지방할거 세력 가운데 하나인 양길 휘하의 장수로 특별한 세력기반도 없던 궁예가 단숨에 삼한 땅 3분의 2를 장악한 것은 그의 카리스마 덕이었다.

궁예는 자신의 자질을 과신, 미륵으로 신격화시키는 인식의 오류를 범했다. 권력을 독점하자 관심법을 내세워 신하들을 쇠 방망이로 작살 내는 폭정을 휘두르면서 ‘선정을 베풀고 있다’고 착각했다. 결국 민심이반으로 자멸했다.

“나는 도덕적으로 승리했다. 나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 행한 모든 일이 자랑스럽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은 성실한 것이었다.” 10년 이상 철권통치로 수십만 명을 학살 ‘인종청소’로 악명 높은 전 유고 대통령 밀로세비치의 옥중 성명이다. 참혹한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범이면서도 반성은커녕 자기 합리화에만 급급한 것은 자기자신을 과신한 착각 때문이었다.

어떤 잘못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여기는 과오를 ‘인식 오류’ 또는 ‘착각’이라 한다. 이런 인식오류 현상은 권력자나 정치지도자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역사를 통해 인식의 오류로 오만과 자만에 빠져 국정을 파탄 내고 자멸한 정치지도자들은 수 없이 많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착각을 사회심리학에선 ‘자기 봉사적 성향(Self serving bias)’이라 한다. 이런 착각은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에 빠져들게 해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편한대로 재단하고 바라보게 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높이 평가하는 ‘착각증 환자’가 된다. ‘착각증 환자’들은 입만 열면 조직이 자기 때문에 잘 굴러간다고 자랑하고 자기 조직이 일을 잘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국가 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90%가 긍정적”,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등 문재인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고 있어 착각의 늪에 빠진 것처럼 비치고 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경제정책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 그런 착각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착각 정부’ 오명을 남길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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