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부장.jpg
▲ 곽성일 편집부국장
포항에도 봄이 왔다. 포항의 봄꽃은 울음 같은 붉음을 토해낸다.

공포의 지진이 지나간 자리에도 봄꽃들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영일만에 해맑은 태양이 떠오르면 포항의 봄꽃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켠다. 바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봄바람에 꽃잎을 내민다. 그날, 지축이 흔들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박완서 작가가 6.25 피난길에서 만났던 꽃들을 생각나게 한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대 초반, 작가 박완서는 피난길에 나섰다가 북한군을 피해 어느 시골 빈집에 숨어든다.

때는 한여름, 찌는 날씨보다 북한군의 눈을 피하기 위한 긴박한 상황이 더 숨 막히게 했다. 피난으로 집을 비운 빈집 문틈 사이로 바깥의 상황을 살피던 작가는 담벼락에 붉게 핀 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쟤는 들키면 어찌하려고 숨지 않고 피었단 말인가”라며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꽃을 속으로 나무랐다. “거기 있지 말고 빨리 이쪽으로 와” 다급하게 꽃에게 안타까운 눈짓을 보냈다. “전쟁통에 숨어있다가 나중에 필 것이지, 목숨이 위태로운 때에 왜 꽃을 피웠단 말인가?”

작가는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전쟁이란 인간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아닌가. 인간이 다급하다고 꽃들도 그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포항에도 봄꽃들이 앞다퉈 피어오르고 있다. 지진으로 땅이 흔들려 놀랐을 꽃들은 봄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포항 시민들의 가슴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음에도 봄 같지 않다. 저마다 놀란 가슴에 상처를 품고 있다. 공포의 금이 간 집은 예전의 안식처가 아니다. 거리에서, 체육관에서, 임시주택에서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지진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는 예전의 평온했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짓누르고 있다.

부드러운 봄바람도 가슴속의 응어리를 어찌하지 못한다.

11.15 지진은 인간이 촉발한 인재(人災)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포항 시민의 가슴에는 또 한 차례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지열발전소가 뚫은 구멍에 물을 주입하면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그런 상황이면 즉각 작업을 중단한다. 그러나 위험 신호등은 무시됐고 작업은 계속됐다. 안전불감증을 넘어 포항시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꼴이다.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분노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보상을 촉구하는 물결이 봄꽃처럼 쉴새 없이 피어나고 있다. 보상의 근거를 마련할 특별법 제정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거리엔 결의대회가, 청와대엔 청원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특별법 발의가 이뤄졌다.

피해 소송도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국책사업을 너무 믿었음을 후회하는 목소리도 새어 나온다. 정부를 믿을 게 아니라 철저한 검증을 해야 했었다는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아린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진 보상이 정쟁의 도구로, 특정인의 전리품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이 기회에 유·무형의 피해 보상은 물론 도시재건과 영일만 대교 건설, 연구중심의과대학·병원 유치 등 숙원사업도 특별법 내용에 들어가 ‘지진 뉴딜’ 정책이 포항에서 이뤄지도록 한목소리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자연의 순리와 같이 인간 세상도 이와 같기를 바라는 맘이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