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분 가운데 외형이 가장 큰 고분은 황남대총이다. 표주박처럼 보인다고 해서 ‘표형분(瓢形墳)’, 쌍둥이 모양이어서 ‘쌍분(雙墳)’이라고도 한다. 이 능은 지금은 경주시 동천동으로 이사를 갔지만 전 경주시청 앞 큰길 건너의 황남동 고분군(사적 제40호)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남북 길이 120m, 높이 22.5m의 거대 무덤으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2년 3개월 동안 발굴이 진행됐다.

이 능에서는 금관과 은관 등 2만49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남쪽 무덤에서는 15세 전후 148㎝ 내외의 키를 가진 소녀의 뼈가 발굴돼 순장(殉葬)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이 무덤에서 발굴된 유리병과 유리잔 세트였다. 남쪽 무덤에서 나온 유리병은 연한 녹색의 달걀모양 몸체에 금실이 감긴 푸른색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병의 입은 새 주둥이 모양으로 오므라져 있어서 빼어난 형태미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포도주 항아리인 ‘오이노코에’ 모양의 이 유리병이 4~5세기 사산조 페르시아나 로마, 터키 등에서 제작되던 것이었다. 주둥이 모양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형(鳳首形) 유리병’으로도 불린다. 


이 병은 발굴 당시 180여 조각으로 깨진 채 발굴돼 복원된 지금과 같은 모양의 병이라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발굴 이후 1980년에야 조각들을 정교하게 조합해 1차 복원을 했고,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재복원에 나서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됐다. 능에서는 유리병과 함께 높이가 12.5㎝, 10.5㎝, 8㎝인 유리잔 세 개도 출토돼 1978년 한 세트로 국보 제 193호로 지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 46년 만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던 높이 12.5㎝ 유리컵의 완전 복원에 성공했다. 지난해 9월 27일부터 5개월 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 개의 유리 파편을 발견해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이다. 국보 제193호의 유리병과 잔은 수십 년에 걸친 세밀한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됐다. 유리 파편을 찾아내 마지막 퍼즐을 맞춰낸 국립박물관 학예사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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