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3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진보정치 지도자 회의’ 연설에서 당시 북한 핵 문제를 언급하면서 ‘큰 거래’라는 뜻의 ‘메가 딜(mega deal)’을 통한 일괄타결을 역설했다. 기업 간 사업 교환이나 거래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 ‘딜(deal)’이 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에 이 때부터 외교 안보 문제에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 용어는 경제를 넘어 외교와 안보 협상의 온갖 회담 전략으로 변용돼 사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 ‘빅딜’, ‘스몰딜’에 이어 ‘굿 이너프 딜’ 이 등장했다. ‘통큰 거래’ 쯤으로 번역될 ‘빅딜’은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요구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의미한다. 이는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을 한꺼번에 공개 폐기하라’는 지난 2월 28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기한 트럼프의 대북 카드였다. 북한은 이에 비해 비핵화 실행을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해 나가자는 ‘스몰딜’을 주장, 회담이 결렬됐다.

이처럼 북미 간 협상의 큰 간극을 줄이기 위해 이번에는 ‘굿 이너프 딜’이 등장했다. ‘충분히 괜찮은 거래’쯤으로 옮겨지는 이 용어는 한꺼번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올 오어 나싱(전부 아니면 전무)’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북핵 해법과 관련, 청와대 관계자가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사실상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의 다른 표현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 열린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던 대북제재 완화나 조속한 3차 북미 회담 재개 문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은 같은 시기인 9~11일 연 노동당 최고인민회의장에서 간부들이 “위력한 보검, 핵무력 완성”이라며 ‘도발은 자제하면서 보유한 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여러 딜이 ‘노딜’로 귀결되고 있다. 또 다시 북한의 ‘살라미 전술’(비핵화 단계를 잘게 나눠 시간을 끌며 단계마다 보상받는 방식)에 휘말려 들고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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