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들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서 갈퀴를 부른다




<감상> 씨앗이 썩어야만 싹을 틔우는 때가 되듯, 흙도 갈퀴를 맞이할 때가 있다. 흙은 가려울 때 겨우내 자고 있던 갈퀴를 부른다. 흙의 온몸을 긁어주는 갈퀴, 덩달아 새싹들은 갓 입학한 어린애처럼 재잘대며 잘 자란다. 이 새싹들이 쏙쏙 올라오듯 우리들의 사랑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가려울 때를 알아서 긁어주는 마음처럼 절절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내가 그대의 등을 긁어주려면 갈퀴손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등짝에서 사랑의 새싹들이 촘촘히 피어날 것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내가 가려울 때 갈퀴손이 되어주는 이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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