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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는 요샛말로 가짜 뉴스의 희생자였다. 그는 군계일학 문재가 빼어났고 거두절미하듯 솔직했다. 여타 문인들 품격을 졸렬하게 만들 정도였다. 자연히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무리가 형성됐다.

일부 문관은 시구를 왜곡해 트집을 잡고는 침소봉대 고자질을 해댔다. 말단 관료였던 ‘이의지’라는 인물도 그랬다. 그는 소식의 옛날 작품을 꼬투리 삼아 조정에 탄핵함으로써 스스로 무게감을 쌓았다. 덩달아 문필이 빈약한 졸보가 너도나도 공격에 참여해 출세의 기회로 여겼다.

현대의 연구가는 말한다. “그들은 한몫 제대로 하였다. 소동파 덕분에 평판도 없이 지냈을 자들이 당대의 명인을 타도하는 일에 끼어들어 명성을 올렸다.” 오늘날 이의지 라는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후세의 사가들이 하찮은 작자를 언급할 까닭이 없었다.

생각건대 음해성 루머는 인간의 심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나보다 잘난 이를 보면 불쾌까진 아니어도 그다지 유쾌하진 않은 건 인지상정.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망설은 누군가를 중상모략 끌어내림으로써 어긋난 희열을 느끼는 일종의 병이고, 자신의 열등감을 전가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심술이다.

요즘은 원래의 소재를 가공한 ‘2차 뉴스’가 흔한 편이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살짝 비틀거나 내용을 슬쩍 가감하기도 한다. 대중은 거짓과 진실이 적당히 섞인 경우에 한층 호기심을 갖는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속아 넘어간다.

미국 대선에선 SNS에 돌아다닌 가짜 뉴스가 트럼프 당선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어쩌면 그런 주장 자체가 황당할지도 모르나, 낭설의 파급력을 알려주는 실례로선 충분하다. 현대는 과거보다 자료의 습득이 수월한 시대다. 그럼에도 신빙성 있는 핵심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 뉴욕 타임스는 가짜 뉴스의 7가지 공통 패턴을 밝혀냈다. 우선 민감한 이슈를 발굴해 허언을 만들고 이를 참말인 양 포장한다. 그런 다음에 남몰래 개입한 사실을 숨기면서 은밀히 전파자를 물색해 조작한 정보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는 어른들 훈계를 담았다. 푸른 머리의 요정은 가르친다.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란다.” 전자는 조만간 탄로가 나기에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고, 후자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속성을 이른다.

짧은 피노키오 얘기는 허언의 실체를 까발린다. 녀석은 계속 자란다는 점과 결코 감출 수 없다는 메시지. 역으로 진실은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필귀정. 문제는 세월의 수레바퀴가 한참 굴러간 뒤에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다.

“권력은 정확하고 진실한 뉴스에도 자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가짜 뉴스라는 말을 붙인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새뮤얼 프리드먼의 변이다. 언론과 야당이 정권을 견제하는 건 존재의 가치이자 부여된 책무가 아닐까.

전문가의 팩트 체크는 철두철미 수행돼야 한다. 사회의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바탕인 탓이다. 가치관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타인을 믿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다. 이는 엉터리 풍문도 일조한 결과일 것이다. 경제와 국방보다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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