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분 재령이씨 13대 석계종부

조귀분 재령이씨 13대 석계종부

"저는 약 340여년전에 '음식디미방' 이라는 음식에 관한 책을 남긴 장계향 할머니의 13대 종부입니다."

360년 전 살았던 시할머니 안동장씨 정부인 장계향 (張桂香)이 남긴 '음식디미방'후광을 지금에 와서 톡톡히 입고 있는 재령이씨 13대 석계종부 조귀분씨(62).

한 집안의 음식에는 그 집 며느리들의 정성이 들어 있다는 조씨는 "음식만들기는 내가 즐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종부로 살면서 힘든 점을 묻자 조씨는 "훌륭한 조상님 덕분에 음식디미방 레시피에 따른 요리 보급과 강의"라고 한다. 남들은 부러워할지 몰라도 할머니의 인품에 누가되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적 중압감이 어깨를 누르기 때문이다. 강단에 서면서 자신의 강의가 옳은 것인지, 잘된 것인지, 항상 따라다니는 의문과 불안도 이 때문이다.

재령이씨 13대 석계종부 조귀분(사진 왼쪽)씨가 음식디미방 강의에서 참석자들에게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또 봉제사, 접빈객은 말할 것도 없다. 훌륭하신 할머니 덕분에 일본 NHK를 비롯해 방송국, 신문, 잡지 등등 여러 곳에서 "시간 좀 내 달라"것도 힘들다는 행복한 비명이다.

조씨는 지난 봄에는 서울 강남구청에서 '음식디미방' 음식강의 요청이 들어와 6월 화요일마다 '음식디미방'강의를 했다. 젊은 시절 가정과 과목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 오랫만에 교단에 서는 마음으로 했는데 강의는 오전·오후반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윽고 강의 연장 요청이 들어와 8월에는 다른 메뉴로 강의를 하는 등 무척 바쁜 날들을 보냈다.

강의 스케줄도 빼곡하다. 8월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9월 신세세백화점 부산, 본점, 영등포점, 10월에 마산점, 그리고 양산대학에 '음식디미방'특강이 예정돼 있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도시에서 온 여인네들이 집안에 대대로 이어져온 음식 비결을 듣기 위해 몰려든다. 조씨는 종가집 여인네의 기품으로 비법을 전수하고, 참석자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식 재료와 만드는 법에 매료돼 받아 적기 바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면 조씨 자신이 자신을 교육하는 것을 느낀다고.

정부인 장계향은 학봉 김성일의 학맥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딸이다. 석계 이시명과 결혼해 친가인 안동장씨와 재령이씨 두 집안을 경상도 지역 학문을 주도하는 시족 가문으로 성장토록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글과 그림에도 능해 1680년(숙종 6) 83세로 타계할 때까지 한국화 '맹호도'와 시 9편, 서간 1편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말년에 남긴 '음식디미방'은 한글로 쓴 최초의 요리서이자 아시아권 최고(最古)의 요리서로 주목받고 있다. 그때 남긴 자료들이 현세에 와서 교육용 자료로 쓰여지고 예절용으로 각광받으면서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은 1999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자녀교육에 남다른 귀감을 보여 후세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은 정부인 장씨의 생애와 뜻을 높이 기려 문화인물로 선정했는데 그때부터 13대 종부 조귀분 여사의 조용했던 삶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장계향이 남긴 음식디미방에 적힌 요리강의 요청이 밀려들어오고, 예절 강의 요청이 오고, 종래는 거처를 영양으로 옮겨 종가보존은 물론, 시할머니 장계향의 삶을 받들고 알리는데 발벗고 나서게 됐다.

종갓집 음식은 맏며느리들이 시집살이 동안 흘렸던 눈물과 정성의 결합체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만 해도 수십 년 동안 한 집안의 음식을 책임졌던 종부의 손에서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종갓집 음식은 이미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한 집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종갓집 음식은 그 집안만의 비밀이기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한식 세계화 등의 영향으로 집안의 특이한 음식들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하고 있다.

종갓집 음식은 며느리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시집살이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이 숨겨진 것이 일반적이다. 영양의 재령 이씨 석계종파 집안의 '음식디미방'처럼 문헌으로 전해진 곳은 극소수다.

하지만 석계종파 며느리도 여늬 집 며느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음식디미방'에는 국수·어육류·채소류·주류 등 146가지 조리 비법이 상세히 적혀 있지만 그림이 없기에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다. 이에 조귀분(62)씨는 시어머니(김증숙)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궁중음식 전문가인 황혜성 선생님과 책을 보면서 수십 번씩 만들었다. 석이버섯떡·섭산삼·연근적 등이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조씨는 모르는 것은 시골 할머니들께 물으면서 하나씩 깨치고, 할머니가 남긴 옛 고어는 경북대 박두문 교수가 알기 쉽게 번역해줘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것이 360년전 음식과 다소 다를지라도 현대적인 재료와 어울리는 음식 개발에 힘쓰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영양군 석보면 높은 곳에 자리한 재령이씨 석계종가 일원은 대대적인 보수·수리중이다. 정부인 안동장씨 예절관이 건립돼 예절·체험교육이 이뤄지면서 많은 교육생이 배출되고 있으며 음식디미방이 남긴 '주류연구소'가 건립중이다.

"2010년 봄 포항에서 '여중군자 장계향' 아카데미가 시인 정동주 선생님의 강의로 월 2회 5개월간 열렸었기에 장계향 할머니를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조귀분씨는 "할머니께서는 음식뿐 아니라 문학적 자질이 있어 10여세에 지은 인간애 듬뿍 담긴 시와 자연을 음미하는 시, 그리고 손자에게 내린 시 몇 수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를 소장한 사람이 3억여원의 돈을 요구해 되찾지 못하고 있다며 씁쓸해 한다.

여성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맹호도(사나운 호랑이 그림)를 10여세에 그려 친정에 두고온 것을 보면 장계향은 치마폭이 엄청나게 큰 분이다. 전처 소생 1남 1녀와 자신이 낳은 6남 2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아들과 손자를 키운 주인공. 조귀분씨 역시 20년전 1남 2녀를 두고 상처한 종손과 결혼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생 딸 하나와 1남 2녀를 모두 잘 키워 출가시켰다.

그릇 하나도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고, 격있는 것을 선택해 쓰려고 하는 세상, 작은 것 하나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생활의 운치가 깊어지면 심미안(審美眼)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이것이 석계고택이 우리에게 주는 첫인상이다.

앞으로 숙제를 묻자 조씨는 며느리의 종부 교육이라고 한다. 책을 펴놓고 가르칠 수 없어 음식에 필수적인 도구를 한 가지씩 마련해주고 있는 정도다. 며느리가 앞으로 할머니가 가장 신경쓰셨던, 베푸는 삶을 실천하면서 종부의 삶을 지혜롭게 헤쳐 나갔으면 하는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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