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전파 오/상/태 박사

대구시 남구 앞산 고산골 등산로 한 쪽에서 오상태(72) 전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고금소총'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김락현기자

구름 한 점 없는 지난 12일 오전. 대구시 앞산 고산골 등산로 한 쪽에서 '허허허'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월이 묻어나는 웃음소리였다. 웃음은 계곡의 물소리와 매미울음과 어우러졌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누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인들이 30여 명 모여 있었다. 이들이 웃음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노인들은 모두 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휴대용 마이크를 착용하고 무언가를 강의했다.

강사는 이들에게 '오박사'로 불렸다. 오상태(72) 전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7년 전 정년퇴임한 뒤, 시민들에게 '고금소총(古今笑叢)'이라는 조선시대 설화집을 풀이해주고 있다.

'오박사'로 불리는 고금소총 전파사 오상태 전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고금소총이라고 하면 옛 선조들의 노골적인 '성'에 대한 음담패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전체 800여 편의 글 가운데 100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선비들이 사회를 풍자하고, 생활 속 이야기를 유머로 풀면서 가르침을 주는 재미있는 책"이라며 오 박사가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금소총은 유교 가르침을 알려주는 '사서삼경'을 실생활에 재미있게 접목시킨 일종의 '업그레이드 판(?)'이다. '사탕옷'을 바른 '쓴 약'이라고 했다. 입에 들어갈 때는 달콤하지만 속에 들어가면 약이 된다는 말이었다.

'사서삼경'이 원론적인 인간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고금소총'은 해학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신문의 내용과 비교하면 '사서삼경'은 '사설', '고금소총'은 '만평'정도로 이해하면 쉽다고 했다.

오 박사는 일단 고금소총은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재상이라는 관직에서부터 노비나 기생이 글의 주인공이 된다. 바보스러운 행동을 한 사람을 꼬집거나, 슬기와 지혜가 곁들어진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는 실제 생활에 자주 쓰이는 한자가 많이 나와 한문공부에 더할나위 없는 '교재'라고도 소개했다. 다소 딱딱한 '사서'나 '삼경'과 달리 내용자체가 흥미를 끌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는 것. 몇 편만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한문의 문법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마다 앞산 고산골에서 열리는 '고금소총 이야기'에는 평균 30명의 학생(?)들이 참석한다.

그는 이곳에서 고금소총 강의만 100회를 돌파, 얼마 전 100회 기념 특별 교양강좌를 개최하기도 했다.

3년이 넘도록 이 곳을 찾은 모범생도 있다. 대부분 기업이나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임을 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모두 고금소총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다른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고금소총 이야기를 꺼내면 자리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명함크기의 종이 몇장에 글귀를 복사해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이야기지만 지금 이 시대에 와서도 충분히 위트가 넘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한문공부도 할 수 있고 선조의 지혜와 슬기도 배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 박사의 한달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어린이집, 유치원, 복지관…. 거의 한 달 내내 강의가 잡혀 있었다. 지역대학 교수들의 모임에서도 그는 고금소총 강의를 한다. 예술인의 모임도 예외는 아니다. 고산골 강의에서 만난 학생들의 소개로 늘어난 강의도 상당 수 있다.

30년이 넘도록 교편을 잡았기에 퇴직하고도 '강의'를 계속하는 것이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고금소총'이야기를 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모든 강의는 무료서비스(?)다.

"30년동안 '교수님' 소리 들었으면 물러날 때 깨끗하게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꼬마아이부터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학생들에게까지 고금소총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니 더 기분 좋다. 동료 교수들도 '가장 성공한 교수'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라고 했다.

그는 매일 계속되는 강의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고금소총'을 번역하고 있다. 오는 11월께 150편 정도를 우선 번역하고 해설을 곁들여 책을 낼 예정이다.

야외수업은 계속할 예정이다. 장소가 허락된다면 고산골이 아닌 시내 중심가에서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경상감영공원' 등을 생각해 두고 있다.

오 박사는 고금소총을 계속 알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10만 명이 '고금소총'이 뭔지 알게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향교에서 '고금소총'을 강의해 보는 것도 이뤄야 될 목표 중에 하나라고 했다.

그는 끝으로 "웃으면서 배울 수 있는 고전작품 '고금소총'에 대한 재평가가 분명 되어야 한다. 수 천년 전 중국인들의 가르침인 '사서삼경'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선조들이 실생활에서 느끼고 겪었던 또한 그럴법한 내용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고금소총'이 훌륭한 교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런 책이 어디있느냐"고 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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