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환 동원화랑 대표

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 화랑 1호점인 동원화랑이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았다.동원화랑 손동환 대표는 "미술 작품은 우리네 인생 삶의 발자국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김락현기자 kimrh@kyongbuk.co.kr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대구 중구 봉산동. 주택가 골목이었던 그 곳에 액자를 만드는 표구사를 찾아온 한 남자가 있었다. 액자를 맞추러 온 그는 주택가와 가게 몇 개가 전부였던 거리를 지나가다가 '가게 세를 놓는다'는 벽에 붙은 종이를 봤다. 계약금 10만 원을 내고 가게를 얻었다. 30년이 지났다. 그 남자는 지금 봉산동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 중 한 곳인 '동원화랑'의 대표가 됐다. 그가 걸었던 거리는 지금 '봉산문화거리'로 불린다. 그가 처음 화랑 문을 열고, 봉산문화거리에는 차츰 화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갤러리나 표구사들도 생겨났다. 봉산문화거리와 함께 걸어온 역사다.

동원화랑 손동환(58) 대표는 그렇게 화상(畵商)이 됐다. 학교 전공도 미술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림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됐을까?

그는 젊었을 때 인쇄업체의 종업원이었다. 그 인쇄업체는 미술관련 책이나 잡지를 찍어내던 곳이었다. 자연스레 그는 화가들과 자주 만나게 됐다.

"동구 불로동에 살고 있을 때 알고 지내던 화가 한 명에게 그림을 한 점 선물 받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논이 있고, 한 아낙네가 머리에 참꺼리를 이고 걷는 풍경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던 집 거실에 그림이 걸리니 완전 다른 세상이 되더군요"

그 때부터 였을까. 그는 그림에 완전히 사로 잡혔다. 그림이 좋았고, 화가들의 순수한 '열정'에 끌렸다. 매일 그들을 만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화랑 주인이라면 부지런히 그림을 사고 팔아야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림만 600점이 넘는다. 좋은 그림을 만날 때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다고 했다.

손 대표는 지난 1982년 지금의 화랑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첫 거래(?)'는 화랑 문을 열기 이전이었다.

"한 친구가 저에게 어떤 화가의 그림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화가와 친분이 있었죠. 화가에게 이야기 했더니 선뜻 작품 한 점을 주더군요. 친구에게 전해주었죠. 그 친구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림에 감동하는 그런 순간을 지켜보는 기분. 그것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하나봐요"

수 년의 시간동안 작품 하나에 감동을 전하기 위한 전도사처럼 그는 열심히 달렸다. 화가와 손님의 중간에서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그림'을 전하는 그는, 지나온 시간동안 매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들끓는다. 고 김기창 화백부터 20~30대의 신진작가까지 모두 그와 '친구'다. 항상 사람들을 만나 막걸리와 소주 등을 나눠 마셨다. 대구에서 누구보다 '술집'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됐다. 오죽하면 공중파 TV 방송 프로그램 작가들이 대구지역의 막걸리 집 등을 소개해 달라고 직접 전화문의까지 했을 정도다.

그가 엮은 수 많은 인연 중 기억에 남는 화가를 물었다. 손 대표는 고 정관훈 화백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순수한 열정 하나로 작품활동을 펼쳤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2005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너무나 기대가 컸었던 작가였기에 그의 빈자리도 컸다고 했다. 마지막 가는 길, 정 화백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시신을 한국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고 손수 이 곳에서 장례식도 치렀다.

지난해 12월 손 대표는 정 화백의 선·후배, 지인들과 힘을 모아 그의 유작 전시회를 열었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70여 명의 화우들은 작품을 기증했다. 전시회 기간동안 서면경매를 통해 4천만 원이 넘는 성금이 모였다. 이 성금은 정 화백의 유가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그 친구를 떠나보냈지만, 언제나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유작전을 늦추면 기약을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추진하게 됐습니다"

올해 동원화랑 개관 30주년에는 더욱 이색적인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첫 전시회는 지난 18일부터 열리고 있는 '영남화단 100년-그 순수와 열정의 기억'전이다. 향토화단의 작고작가 22인의 주옥같은 작품 30여 점을 모아 여는 첫 전시회다. 대구지역의 한국근대미술의 단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미술적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은 바로 대구와 개성입니다. 대구에는 그만큼 열정적인 작가들이 있었지요. 이인성, 이쾌대 등 우리나라 근대 미술사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모두 이 곳 출신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정경덕, 김호룡, 소삼영 등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정경덕은 현재 가족들과의 연락도 되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 자체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됐다. 유일하게 손 대표가 그의 작품을 가지고 있고, 이번 전시회에 공개한다.

영화배우 하정우의 전시회도 연다. 그는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여러차례 개인전을 열 만큼 미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가져와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3월 중에 그를 직접 초청키로 했다. 가수 조영남의 전시회도 추진 중이다.

"그림 단 한 점으로 내 맘을 모두 빼앗겼던 김창태 화백의 작품전도 올해 기대하는 전시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올 연말에는 화랑과 인연을 맺었던 작가들을 모아 작은 파티도 열까 합니다"

한 길만을 걸어온 그림을 통해 행복과 기쁨만 가득할 것 같은 그에게도 나름의 안타까움은 있다. 미술 경매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그림이 재테크의 수단이나 돈벌이용으로 전락하는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 그림을 보고 감동했던 자신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림을 소개시켜주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감동이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그는 "내 삶은 미완성으로 남을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완성한다는 느낌의 목표가 없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감명깊게 들었던 두 사람의 말이 있습니다. 한 명은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씨인데 자신의 1천번째 콘서트의 소감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한줄 한줄 기타 줄을 튕기다 보니 천회더군요'라고 했습니다. 바둑기사 조치훈씨는 '나는 바둑을 이길려고 두지 않는다. 한 돌 한 돌 정성스레 둘 뿐이다'고 했어요. 저도 그냥 한걸음 한걸음 걸을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진행형인거죠.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럴거니 미완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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