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국악인 작년 경기국악제 명창부 대통령상

"해뜨기 전 신항만 바닷가에서 연습을 했어요"

지난해 9월 제16회경기국악제 경기민요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한 박소연씨(사진·57)는 대회 준비에 매진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말했다.

지난달 26일 포항시 북구 장성동 '박소연 국악연구소'에서 만난 박씨는 고달픈 삶마저도 소리에 녹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박소연씨가 국악의 매력에 빠진것은 13살 무렵 신라문화제 구경을 갔다가 였다.

이후 경주시립국악원에 입학한 그녀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국악 유망주'로 성장한다. 그러던 중 시조 경창대회에 출전한 박씨는 심사위원이었던 김월화 선생님의 눈에 띄어 서울 유학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탓으로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기 일쑤였다. 결국 박씨는 경제적 이유로 국악 공부를 중단하게 된다.

24살 되던 해 박씨는 선소리타령 인간문화재이자 국악계의 거목인 이창배 선생으로부터 경기민요를 배우던 중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5년 예상했던 경기민요 이수를 20년만에야 마쳤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훗날 한국에 돌아와 '국악한마당' 등 TV프로그램 등에서 활약했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악 프로그램은 줄줄이 없어졌다. 또다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는 국악계를 떠났다. 소리를 등진 15년 동안 박씨의 삶도 얽히고 설킨 인연 속에서 평탄치 않았다.

2006년 포항에 정착하면서도 '다시는 소리를 하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그녀의 재능을 소중히 여겼던 지인들의 권유로 박씨는 국악인의 길을 다시 걷게 된다.

'박소연 국악연구소'를 여는 등 국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중, 지난해에는 전국대회 대상을 받으며 '국악인 박소연'은 부활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스승님들에게서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운 덕에 10년이 이상의 공백도 뛰어 넘을 수 있었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러나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해 듣고 수정하기를 수백번 반복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날의 영광이 가능했으리라.

포항에서 국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회를 묻자 박씨는 "잡가는 뒷전이고 상대적으로 쉬운 민요부터 가르치는 현실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경기민요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국악 꿈나무'를 길러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경기민요의 매력을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씨는 '애환과 경쾌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것'이라 답했다.

굴곡진 세월 속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을 잃지 않았기에, 한과 경쾌함 사이의 줄타기를 해낸 '국악인 박소연'이 있을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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