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기내에서 라면을 제대로 익혀오지 않았다고 폭언과 폭행을 한 '라면 상무'에 이어 '빵 회장'이 또 갑(甲)의 권세를 부리다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갑의 행패를 부린 중소기업 대표는 경주빵과 호두과자를 생산하는 강모 베이커리 회장이다. 강회장은 지난 24일 서울 한 호텔 1층 임시주차장에 자신의 외제차량을 세웠다. 이곳은 공적인 업무로 호텔을 방문한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이 잠시 주차하는 곳이다. 강회장이 차를 오래 주차해 있자 호텔 현관 지배인이 차량을 옮겨 주차해 달라고 했다. 지배인이 수차례 같은 요구를 하자 강 회장이 폭언을 하고 지갑으로 지배인의 뺨을 수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이 같은 갑(甲)을(乙)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자주 사회이슈가 되고 있다. 원래 갑을관계는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통상 갑이 을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우월적 지위인 쪽을 갑, 그 상대를 을이라 부른다.

'갑을문화'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IMF사태 이후 정보화와 민주화의 큰 진전이 이뤄 진 것과는 달리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일부 대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갑'과 '을'로 환치하기 시작했다. 세계 15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투명성지수는 45위(지난해 기준)에 그치는 사회 현실이 갑을문화를 낳은 것이다.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다. 갑중에서도 갑을 '슈퍼갑'라 부르고, 갑의 부당한 행위를 '갑질', 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도 거역할 수 없는 계약을 '을사(乙死)조약'이라 하는 등의 신조어들까지 등장했다.

인간은 권력을 가질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권력자들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상대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독단적일 뿐 아니라 때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갓 대기업 상무에 오른 사람이 부하직원도 아닌 비행기 승무원을 막 대한다든가 중소기업 회장이 호텔 지배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것도 이런 심리에서 기인한다. 갑을관계가 자주 사회문제로 대두 되는 것은 뒤집어 보면 우리사회 구성원들 간에 갑과 을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갑들이여! 이제 더 이상 '갑질'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을 명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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