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천(大鐘川)에는 전설이 있다. 대종천은 경주 토함산에서 발원해서 동쪽으로 흐른다. 함월산 기림사에서 흘러 나오는 물줄기가 합쳐져 양북 들판을 가로지른다. 이 천은 감은사터 앞을 지나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알려져 있는 대왕암이 있는 바다로 흘러든다. 대종천이 바다로 가는 이곳 주변은 대왕암과 이견대, 감은사터가 있는 신라 역사의 현장이다.

대종천 인근 마을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대종천에서 '웅웅' 종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전한다. 또는 어떤 머구리(잠수부)가 감포 앞바다에 풍랑이 심할 때 바다에서 종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대종천은 경주 시내에서 토함산만 넘으면 바다에 가서 닿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물길이다.

고려 고종 25년 몽골이 신라를 침략해 왔을 때 황룡사 종을 노략질 해가다 이곳에 빠뜨렸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유사' 3권에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13년(754년) 황룡사의 종을 주성(鑄成)하니 무게가 49만7581근이었다"라 기록돼 있다. 당시 황룡사에 있던 종이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뜰에 있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보다 네 배쯤 더 컸다는 것이다. 그 종을 몽골군이 동해 바다를 이용해 가져가려다가 폭풍우를 만나 대종천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종천이나 앞 바다에서 종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도 다 이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이 같은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곳 해역에서 종과 도자기를 보았다는 해녀들의 제보가 있따랐다. 지난 1982년 11월에는 해녀들의 증언에 따라 한병삼 경주박물관장을 단장으로 한 6명의 심해잠수부가 반경 500m의 해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유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1989년 미군 비행기가 봉길리 앞바다에 추락했을 때도 동원된 수색팀을 활용해 문화재관리국이 탐사에 나섰지만 종을 찾지 못했다. 이후 1997년 4월에도 해군까지 동원된 황룡사대종찾기탐사반까지 꾸려 달포가 넘게 수중탐사를 벌였지만 역시 허사였다.

최근 어구를 찾던 잠수부가 감포바다 수중 25m쯤 되는 곳에서 종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 신고해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탐사하고 있다. 황룡사 종이든 감은사 종이든 건져올리기만 하면 신라역사를 증언하는 '세기의 발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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