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울긋불긋 봄꽃 지쳐 온 산천이 초록 물결인 5월이다. 그러나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소금과 미역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지게꾼들에겐 피고 지는 꽃도, 청량한 바람에 일렁이는 신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갯길의 길고 긴 노역이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가노" 앞선 지게꾼이 선소리를 대자 뛰따르는 대여섯 일행들의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힘겨운 후렴이 산계곡으로 울려 퍼진다. 지게에는 동해 바닷물을 끓여 만든 전오염(煎熬鹽)을 그득 담은 커다란 독이 실렸다. 소금독에는 갓 잡은 고등어도 몇 손(두 마리) 찔러 넣었다. 안동 특산물이 된 간고등어다. 지게 등받이에는 돌문어 네댓 마리와 동해의 질좋은 돌곽(자연산 말린미역)도 여러단 얹었다. 타박타박 산길을 걸어서 동해 바닷가 특산물과 내륙의 산물을 교환 유통시킨 십이령 등금쟁이(지게꾼)의 모습이다.

십이령은 동해 바닷가 마을인 '흥부(울진군 북면 구정리)장터'에서 하당(당거리)마을을 지나 말래(두천 斗川)마을을 거쳐 크고 작은 12고개를 넘어 영남 내륙인 봉화 소천으로 이어지는 '미역과 소금의 길'이다. 두천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바릿재~평밭~느삼밭재~너불한재~저진치~한나무재~넓재~고치비재~멧재~배나들재~노루재로 구비구비 숨차게 이어진다.

이 길은 민속문화의 현장이다. 말내를 가로질러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고개턱에는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가 있다. 1890년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철비(鐵碑)를 십이령을 넘나들며 평생을 보낸 선질꾼(울진지역민들이 바지게꾼을 이르는 말)들은 목숨보다 더 애지중지했다. 철비는 봉화 소천장을 관리하는 반수(우두머리) 권재만과 접장(장터 관리인) 정한조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다. 울진지역 지게꾼들이 이들에 대한 사무치게 고마운 마음을 새긴 것이다.

십이령길 오가며 생계를 이어간 민초들의 애환을 오롯이 담은 마을 축제가 열린다. 울진군 하당리 삼당권역 십이령마을에서 11일과 12일 열리는 '십이령등금쟁이 축제'다. 바지게놀이와 주모선발대회, 짚공예, 등금쟁이달리기 등 볼거리와 주모한상, 곰취찰떡, 도토리전병 등 먹을거리도 침 넘어간다. 이 축제는 마을 사람들이 꾸리고, 마을 사람들이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치루는 마을축제라서 더욱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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