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 볼 수 있을까

 봉은사 앞길에 그 수많은

 연등이 불 켜는 저녁이면

 그림자마저 슬픈 그 저녁에

 나는 얼마나 울었던지 가슴에는 더 이상

 상처 돋을 자리가 없었다

 인연에 따라 그대 따스한 가슴

 잠시 내가 차지했고

 인연이 다함에 따라 그대 떠난 것을

 내가 누군가에게 저질렀을지 모를

 업보로 여기며 나는 아프단 말도

 못하고 울음을 삼키었다

 그처럼 모질게 그대 떠난 것은

 또 다시 사월이 오고

 봉은사 앞길에 연등이 불 켜는 저녁,

 그날처럼 거기 서 있으면

 그대 다시 볼 수 있을까

<감상>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인연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사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사의 모든 것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연유하고 보면, 지나간 날들의 형상들은 다시 그 시기가 돌아오면 그리운 것이 인간이 갖는 보편적 정서인 것이다.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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