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덕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

이 땅에 태어나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랜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반 서민들의 삶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근 언론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불황이니 뭐니 하면서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하듯이 지금 다시 들추어낸다고 해서 새삼스러운 일은 될 수 없다.

왜 이렇게 고달프고 괴로운 것인가 하면 서민이기에 앞서 이 땅에 생을 받아 나온 중생(衆生)이기 때문이다. 중생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생사(生死)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옛날에 비하여 생활이 편리해지고 고통이 줄었다고 하여도 유마경에서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는 것처럼 중생이란 나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여정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 온갖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변함없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실체에 집착하여 갖가지로 전개하는 망상이야말로 생사하는 중생들에게 있기 마련인 병이다. 병든 자에게는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유마경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일체중생이 병이 들었으므로 나도 병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생사라는 병에 걸린 중생들을 위하여 스스로 생사윤회의 세계로 들어온 유마거사의 말이다.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그 병을 알아채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중생들과 동일한 입장이 되고자 스스로 병을 자청한 것이다.

만일 유마거사가 저 열반(涅槃)의 언덕 너머에서 중생들을 향하여 생사의 세계에서 나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직접 중생들 곁에 동일한 병을 앓게 될 때에 그 병에 대한 치유방법을 자세히 일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병이 무슨 원인으로 생겼느냐 하시니, 보살의 병은 대비심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중생이 생사라는 병에 걸렸다면, 보살은 대비라는 병에 걸려서 함께 같은 병동에 머물면서 그 병을 핑계로 하여 중생들에게 생사에서 벗어날 길을 알려주려고 한다.

"만일 일체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요,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습니다. 만일 중생이 병을 여의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이라고 유마거사는 말하는 것이다.

이제 4월 초파일이다. 역사적으로는 2천 6백년 전 이 땅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다. 부처님께서 오신 이유는 일체중생을 해탈(解脫)케 하겠다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설명한다. 낮은 곳에 임하여서 더불어 함께 하고자 스스로 괴로움을 자청하신 날이 바로 초파일이다. 중생의 생사라는 병이 바로 보살의 대비라는 병을 일깨우며 이러한 병을 치유함에 의해 부처님이라는 큰 과보를 얻게 하는 시작이 되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은 해마다 기념해야 하는 거룩한 기념일의 의미를 초월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란 바로 누구나 저 낮은 곳으로 기꺼이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자 하는 따뜻한 자비심을 드러내는 날이며, 그 자비심 펼쳐지는 곳은 어디든지 부처님 오신 곳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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