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피부·비뇨기과 원장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든 지 약 30여년. 그리고 포항에서 판소리 공연을 기획해서 소개하는 것을 약 6년 동안 해오다보니 강의시간을 빌어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는 기회가 가끔 있다. 그 때마다 받는 질문들은 한결 같다. '왜 의사가 판소리에 빠져들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판소리를 접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판소리의 매력을 설명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서양 음악과 비교 하는 것인데 그 중 서양 오페라와 비교하여 주로 설명을 한다. 서양 오페라에 비해 판소리의 뛰어난 점으로 나는 주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 판소리는 오페라와 달리 한사람에 의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페라는 작곡가가 있다. 가령 우리가 아는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등은 이탈리아 출신의 베르디라는 작곡가가 작곡한 오페라다. 하지만 '춘향가'니 '심청가'니 하는 판소리의 작곡가는 따로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근 300년 동안 이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들고 더 좋은 소리가 살아남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고정된 예술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대정신이 반영된 예술작품이 바로 판소리인 것이다.

둘째, 개인적으로 판소리의 가장 뛰어난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 무대와 객석의 관계, 즉 판소리의 소리꾼 혹은 오페라 성악가와 관객 간의 관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페라는 성악가와 관객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물론 성악가의 주옥같은 아리아가 끝난 후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는 대목은 있지만 연기와 노래가 불려지는 동안에는 숨죽여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객의 태도이다. 하지만 판소리에서의 관객은 이미 수동적인 관객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리판의 중요한 일부이다.

소리꾼이 잘할 때는 '얼씨구' 혹은 '잘한다'로, 또 슬픈 대목에서는 함께 슬픈 음정으로 '그렇지' '아먼(암)' 등의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준다. 추켜세운다는 의미의 추임새를 통해 소리꾼은 더욱 흥이 오르고 관객은 적극적으로 몰입하게 되며 소리판은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혹 소리판에서 애기울음소리든 관객의 예상치 못한 반응들에 소리꾼은 재치넘치는 재담을 통해 소리판을 유쾌하게 하는 또 다른 재미 또한 오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판소리만의 특징이다.

요즘 정치권을 비롯해서 사회전반에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화두이다.

관객과 무대 위 소리꾼의 어우러짐이 바로 '소통'이며, 우리는 판소리를 통해서 이런 전통을 이미 300여 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가 대대로 스며들어 있고, 또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이라는 큰 미덕을 가진 판소리가 요즘 많이 소외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유형의 문화재와는 달리 판소리처럼 무형의 문화재는 우리가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그 예능을 가진 보유자가 사라지며 함께 소실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내가 판소리와 소통하고 사랑하며 정성을 쏟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