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칠포리와 신흥리 일대에 '포항칠포리암각화군(群)'이 있다. 칠포 바닷가의 곤륜산에는 작은 골짜기나 산 등성이의 자연석 마다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이곳 유적에는 '검파형'으로 불리는 칼 손잡이 모양의 크고 작은 암각화가 음각돼 있다. 또 신흥리 일대의 오줌바위 유적에는 별자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바위구멍과 선각(線刻) 등 다양한 형태의 암각화가 있다.

칠포리암각화군은 전혀 보호받지 않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칠포리 암각화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암각화가 먹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탁본을 뜨면서 아예 돌에다 먹물을 칠해 놓은 것이다. 이 유적 바로 앞에는 공장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했다. 해안도로 가의 돌에 새겨져 있는 암각화와 여자 성기 모양을 새겨 놓은 부분은 훼손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신흥리 유적은 여러 번 산불에 그을려 큰 피해를 입었다. 풍화와 산불로 심각한 훼손을 입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커녕 관련 연구 기관에서의 제대로 된 정밀 조사도 한 번 이뤄진 바 없다. 대학의 암각화 연구자 대부분이 향토사가 등 민간 연구자들이 일궈놓은 성과들을 그대로 인용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입자가 굵은 사암을 쪼아파기(peeking)로 선각해 놓았기 때문에 풍화작용에 의해 급속하게 마모되고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10년 넘게 해 온 변영섭 문화재청장에게 '반구대 청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운동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들어 문화재청장에까지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통 그의 관심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꽂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울산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노천에 놓인 수많은 유산들이 비바람에 맨몸으로 시달리고 있다. 칠포리 암각화가 그렇고, 형산강변의 경주 석장리 암각화들도 새긴 선이 일그러져가고 있다. 그 뿐인가. 경주 남산의 삼릉골 선각육존불도 형체가 희미해지고 있다. 변 청장은 "반구대는 그림으로 쓴 역사책… 종이가 물에 젖게해선 안된다"고 했다. 물에 젖고 있는 역사책이 어디 반구대 뿐인가. 변 청장은 '반구대 청장'이 아니다. 변 청장은 '문화재 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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