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어른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풍요롭고 올곧게 성장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세태 속에 처벌이 아니라 치유가 먼저인 법정이 있다. 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엄벌에 처하는 대신 소년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먼저 헤아리는 판사가 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의 저자 천종호 판사다.

천 판사는 지금까지 7천6백여 건의 소년 사건을 처리하면서 6천여 명이 넘는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누구 하나도 그냥 법정을 나서게 하지 않았다. 책 속에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따끔하게 호통치고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하는 특별하고도 가슴 찡한 법정 풍경이 펼쳐진다.

소년과 부모는 부등켜안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법정이 떠나가라 엉엉 소리내어 웁니다. 서로 울음으로 공명하면서 관계회복의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 법정에서 흐느끼는 소녀에겐 아빠의 마음으로 준비한 배냇저고리를 선물하고, 가난과 굶주림으로 돈을 훔친 자매에겐 용돈을 넣은 작은 지갑을 건네주고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 지갑을 생각하라고 말하는 따뜻한 삼촌 같은 판사다.

책 속에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학교폭력의 생생한 현장들이 아프게 드러나 있다. 잔인한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법정에 선 아이들 중 대부분이 우리 주변의 순하디 순한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천 판사는 잘못은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을 가파른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 어른들에게 있음을 아프게 일깨워준다.

제대로 된 보살핌만 있었더라도 소년들이 비행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다. 또한 시간 변경선이라는 흐르는 길 위에 서 있는 소년들의 실수를 드러난 행동만 문제 삼아 엄벌에 처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키운다.

'위험수위를 넘은 이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우리 사회의 성마르고 날 선 물음에 오히려 '아이들이 방황하고 좌절할 때 우리는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고 차분하게 되묻는다.

그러나 저자는 학교폭력에 대한 온정주의나 아이들은 아이들일뿐이라는 감상주의적 접근 역시 단호히 거부한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폭력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또렷하게 환기시켜 주는 동시에 학교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전문가다운 적확하고 속 시원한 해결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위험수위를 넘어서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학교폭력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망연해하고 있는 우리사회에게 희망의 나침반을 쥐여 주고, 건강한 학교로 바로설 수 있는 길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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