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문화상 수상 이영희 전 포스코 인재대학원 교수 인터뷰

올해 애린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영희 전 포스코 인재대학원 교수.

전래동화나 설화로만 여겨졌던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사실로 입증해 유명한 이영희 전 포스코 인재대학원 교수(82).

그가 얼마 전 올해 애린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또 한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애린문화상은 애린복지재단(이사장 이대공)에서 문화·예술분야에 활발한 활동으로 공을 세운 인물을 뽑아 주는 상이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수석 졸업한 이영희 교수는 동화작가로 등단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사에 근무하다 일간지로 이동해 정치부장까지 올랐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돌연 한일관계사에 매달리더니 결과물을 책으로 내기 시작, 이도 모자라 두 달에 한 번 잡지를 출간하고 있다.

1931년생이니 올해 나이 여든 둘. 환갑만 지나도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기 마련인데 이 교수는 "할일이 너무 많아 바쁘다"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좀처럼 쉬지않고 담금질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애린문화상 시상식은 10월에 열리지만 열정적인 삶 속 원동력을 찾기 위해 수상을 빌미로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해 말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를 퇴직했다. 근황이 궁금하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갈 정도로 바쁘다.

며칠 전 일본에서 취재진이 와 응대하느라 무척 바빴다. 지금도 일본에서 온 역사학자가 집에 와 있다.

매일 7시간 이상 한일관계사 연구에 몰두한다.

알게 된 사실들을 닥치는 대로 기록하기 위해 매진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인데 시간이 부족하다니.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구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많아 전화번호를 자주 바꾼다.

△연구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고 하는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이상할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과 거꾸로 생활한다. 낮에는 전화도 많이 오고 볼일도 봐야 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잠이 드는 시각인 밤 10시부터 집필에 들어간다. 새벽 5시까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몰두한다.

그리고 지역일간지 2개와 중앙일간지 2개를 훑고 오전 6시 잔다. 오전 11시에 일어나 정오쯤 첫 식사를 하고 잡힌 일정대로 움직인다.

△역사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한국일보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경주에서 '천마총'이 발굴됐다.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사가 1면을 장식할 일은 드물지 않나. 그런데 천마총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천마도 등 중요한 유물이 마구 쏟아지면서 계속 1면 머리기사를 써야했다. 때문에 역사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 그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며 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역사공부에 재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해석한 책을 봤는데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직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고대 역사책이 한자의 음을 빌려 쓴 이두체로 기록된 것을 알았고 독학으로 이두 연구에 몰입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매진하게 된 것이다.

△한일관계사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한국일보 문화부 근무시절 당시 장기영 사장이 일본 곳곳을 취재하고 오라했다. 내가 도쿄에서 태어나 일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장 사장이 특명을 내린 것이다. 출장비가 꽤 두둑해 무려 3개월이나 일본 곳곳을 누볐는데 그 중 한 신사를 들르게 됐을 때다.

주인에게 신사 이름을 물었는데 모른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입구 돌기둥에 새겨진 한자를 우연히 이두식으로 읽어봤는데 '아라가야의 무쇠가는 사나이들의 신사'로 해석됐다.

혹시나 싶어 주인에게 '아라가야계 신을 모시는 신사냐'고 하니 '어디 가야인지는 모르는데 가야에서 오신 신은 맞다'고 했다. '신체(神體)가 무쇠같은 것이냐'고 하니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묻더라.

그래서 일본 고대사를 이두식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풀이가 되는 거다. 그 뒤 한국과 일본의 역사책을 뒤지며 한일관계사 연구에 들어갔다.

△일본 역사책도 이두체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건가.

-일본에는 8세기 초 간행된 네 가지 고전이 있다.

고대사 책인 일본서기와 고사기, 풍토기, 그리고 우리 신라 향가와 비슷한 노래를 모은 만엽집이다.

이들 역사서가 이두체로 쓰여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식 이두체는 아니고 당시 일본에서 쓰여진 일본식 한자의 음과 훈에서 빚어진 소리로 우리 고대어를 표기한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 책을 중세 일본어와 현대 일본어로 해독하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고대 한국어로 쓰였으니 중세 일어나 현대 일어로 읽힐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일본 역사책이 고대 한국어로 쓰여 있다는 것인가.

-일본은 극히 소수의 원주민을 제외하고 선주민 자체가 한국계다. 각 지방의 우리 고대어, 즉 한국 고대 방언이 천년 넘게 걸쳐 쌓이고 쌓여 오늘 날 일본말의 뼈대가 됐다. 고대 한국어로 역사책을 읽으면 너무나 환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고대어로 일본 역사책을 추적하면 그동안 잘못 풀이돼 왜곡된 한일 고대 교류사의 진상이 드러난다.

△대단한 발견인데 성과에 비해 크게 주목을 못 받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를) 배척하고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왜곡한 역사가 드러날까 봐 외면한다.

일본 역사 가운데 천황의 역대 왕조에 관한 기록 중 과장된 부분이 많다. 가령 6대에 걸쳐 기록된 왕들이 알고 보면 동일 인물이다. 정통성을 세우려고 한 사람을 몇 대로 늘려 놓은 것이다. 너무 쉽게 알 수 있는데 천황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으니 받아들이지 않는 거다.

△그래서 한일관계사 연구에 더욱 매진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여 가만있을 수 없으니까. 또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암호가 풀렸고 이제 보물을 캐면 되는데 다들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대어를 재구성하고 한일 고대 교류사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 작업은 나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일어로 쓴 책 '또 하나의 샤라쿠(화가 김홍도와 일본 천재화가 샤라쿠가 동일 인물이라는 내용)'를 한국어로 다시 써 출간하기로 돼 있는데 여태 못쓰고 있을 정도다.

△올해 애린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데 소감 부탁드린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포항은 역사 연구를 할 게 많은 곳이다.

좋은 상도 받았는데 앞으로 포항지역 역사와 더불어 한일관계사 연구에 더욱 정진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알게 된 것을 최대한 많이 남기는 데 애쓸 것이다.

※이영희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31년 12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조선인이지만 도쿄에서 차 한 대로 시작해 큰 택시회사까지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자랐다.

1945년 미군의 일본 본토 공격에 불안을 느낀 그의 부모가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오면서 이후 한국에서 살았다.

포항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외삼촌 등의 권유로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이어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입학, 수석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국내 첫 시동인지인 '죽순'에서 작품을 추천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또 기숙사 비를 벌기 위해 부업을 알아보다 당시 국어선생님(시인 박목월)의 소개로 한글학회 일을 돕게 되면서 '우리말 큰사전'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돼 동화작가로 활동, 9권의 동화집도 냈다. 대학 졸업 후 월간 새벗에 들어가 편집부장 등을 거친 뒤 한국일보사측의 제안으로 소년한국일보 편집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에 발탁돼 또 한 차례 이직,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고 기자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전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

한일관계사 연구에 몰두하던 중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로 임용, 제철사(製鐵史)를 주로 강의했다.

2012년 12월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 1999년 창간한 일어판 회원제 계간지 '마나호' 간행에 집중하고 있다.

마나호는 '진실'이라는 뜻의 고대 일본어로, 한일관계사의 진실을 주 내용으로 두 달에 한 번 출간되고 있다.

남편은 한국의 안데르센으로 불리는 동화작가 김요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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