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정푸(雷政富)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역사적 인물'로 실리기도 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중국 공산당 고위 관리들은 학교 교과서로 스스로를 홍보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레이정푸는 충칭 토박이로 그의 관직은 3,4년에 한 단계씩 올랐다. 27세였던 1985년 창서우현 당사무실 책임자 비서였던 그가 4년 뒤에는 당 상무위원, 선전부장에 올랐다. 그는 승승장구, 텐장현 당 서기, 충칭시 베이베이구 구청장, 구 당서기, 충칭시 시관간부를 역임했다.

그러나 레이정푸는 문란한 성(性) 스캔들로 더 유명하다. 2009년 그와 젊은 애인 자오홍샤와의 음란 동영상 파문이 터졌다. 레이정푸는 당시 중국의 차세대 최고 지도자감으로 거론되던 보시라이(薄熙來)에게 도움을 청해 사건은 간신히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권력다툼에서 밀린 보시라이가 수뢰혐의로 2012년 실각하고, 이어 레이정푸도 지난해 11월 면직처리 됐다. 그의 젊은 얼나이와의 섹스 비디오가 공개된 뒤 63시간 만의 일이었다. 레이정푸 사건이 중국인의 공분을 산 것은 권력을 이용해 어린 '얼나이'를 두었기 때문이다. '얼나이(二奶)'는 두 번째라는 2와 젖, 유방을 뜻하는 내(奶)가 결합된 것으로 세컨드를 의미한다. 이 레이정푸 스캔들은 부패한 권력 뒤엔 정부나 첩이 있다는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었다.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국에서는 공개적인 축첩이 사라졌다. 이후 중국 대륙에서 다시 축첩 문제가 떠오른 것은 개혁 개방 이후부터다. 광둥성 선전 등 경제특구를 시작으로 1990년대 들어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성공한 남성이 젊고 예쁜 새 아내를 전리품처럼 취하는 '트로피 와이프(troppy wife)'를 두는 것같이 중국 고위 관리들도 앞 다퉈 얼나이를 두었다. 1999년 광둥성에서 부패혐의로 조사받은 공무원 102명 모두가 정부나 애인이 있었다니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향락, 사치, 관료, 형식주의 4대병폐 척결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중국 중앙정부 부국장의 불륜과 사치행각을 폭로한 TV앵커 출신 지잉난, 류텐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의 부패 사실을 언론에 제보한 내연녀 등이 중국 반부패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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