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편집위원

브라질의 대도시마다 시위군중이 넘친다고 외신은 전한다. 백만명이 넘는 군중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월드컵보다는 민생을 챙겨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경제가 왜 이리 갑자기 망가진 것일까. 1990년대 초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면서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1993년 이전까지는 남미의 대국 브라질은 그 덩치 값도 못한 채 당시 세계의 웃음거리였었다. 매년 하늘 높이 치솟는 살인적 물가, 정부부채의 누적 그리고 극심한 빈부격차로 신음하면서 남미의 조롱거리가 됐던 것이다.

이 모든 악재의 근원은 '시대착오적인 국가통제 정책'에 있다고 확신한 현자가 나타났다. 1993년 재무장관에 취임했던 페르난도 카르도스가 바로 그다. 그는 안정과 개혁개방의 청사진을 담은 '신 브라질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 성과를 거두자 대통령에 당선돼 일관되게 이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의 연임 후 바통을 이어 받은 노조위원장 출신 룰라 실바 대통령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좌파정책을 도입하기는 했으나 전임 대통령이 수립했던 정책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룰라 대통령은 무려 3천여만 명에 달하는 빈자들을 극빈의 수렁에서 탈출시켜 세계의 찬사를 듣기도 했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21세기에 접어든 브라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 같은 성과를 낸 경제정책의 근간을 들여다보면 기상천외한 것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다. 물가안정을 달성키 위한 중앙은행의 철저한 독립운영, 부채를 삭감키 위한 정부재정 목표제 도입 그리고 각종 규제철폐와 자유화 정책들이다. 중요한 것은 정책수행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유지됨으로써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줬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룰라 대통령 말기부터 지속적 시장개혁을 포기한 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식 방식의 도입도 고려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그리고 기업들에게까지 과도하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재정목표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글로벌 자원시장이 곤두박질치자 세수격감에도 불구하고 겁 없이 돈을 풀기 시작했다. 국내산업보호를 위해 관세도 인상했다. 결과는 참담해 2012년 GDP 성장률이 0.9%로 추락한 후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룰라가 후계자로 지명해 당선된 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이 와중에 백만 시위군중과 맞서 있다.

물론 그 잠재력으로 볼 때 브라질 경제가 끝없이 망가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농업과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광물과 곡물 등 자원시장이 회복된다면 단박에 경제가 좋아질 수도 있다. 물론 경제운영을 잘 해 나가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그리고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현재 브라질 경제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소나기를 피하고자 하는 일과성 정책시행만으로는 위기돌파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원대한 목표를 달성해 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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