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840년(문성왕 2년) 당나라 유학생 105명이 유학 만료가 되어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유학생들은 지식 습득에만 그치지 않고 빈공과(賓貢科 외국인을 상대로 한 과거)에 응시한 유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당나라와 그 뒤를 이은 오대까지 빈공과에 합격한 신라 유학생은 모두 80명에 이른다. 이처럼 빈공과 급제자가 많았던 것은 당나라 과거급제가 곳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빈공과 합격자 가운데서도 단연 화제의 인물은 최치원이다.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十年不第 卽非吾子也)". 6두품 출신인 최치원이 12살 때(868년) 당나라로 조기 유학길에 오르기 전 아버지 견일(肩逸)이 아들 고운에게 매조지하는 말이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최치원은 874년 유학 6년만에 당당히 고과(高科 우등급제)에 합격했다. 그 뒤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을 토벌하는 격문인 '토황소격문'을 비롯해 여러편의 시와 문장으로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최치원은 당으로 떠난 지 17년만에 신라로 귀국해 국정에 참여, 신라사회의 개혁을 시도하지만 좌절되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다.

//掛席浮滄海(괘석부창해) 돛 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 長風萬里通(장풍만리통) 긴 바람 만리에 나아가네/ 乘槎思漢使(승사사한사)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 採藥憶秦童(채약억진동) 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도 생각나네/ 日月無何外(일월무하외)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乾坤太極中(건곤태극중)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 있네/ 蓬萊看咫尺(봉래간지척)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 吾且訪仙翁(오차방선옹) 나 또한 신선을 찾겠네//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 바다에 배 띄우다)' 전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대통령의 방중 때인 27일 확대 회담 환영사에서 최치원의 시의 앞 두 구절을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가 유구하다는 것을 이 시로 보여 주었다. 중국 내 한국 유학생 수가 6만명을 넘었고, 한국 대학중 중국 유학생 수가 1천명을 넘는 학교가 10곳이나 된다. 이번 박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오랜 유학의 역사를 가진 한중간 인문교류가 더욱 활발해 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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