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수필가

회전목마는 밋밋했다. 더 짜릿하거나 정신이 번쩍 드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범퍼카를 향했다. 내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공포와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쩌면 전신에 묵직하게 부딪쳐오는 충격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였다. 핸들을 잡아 움직여 보니 작동이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발아래로 가속페달 하나가 달랑 눈에 들어올 뿐 브레이크는 보이질 않는다.

손과 발에 닿는 것이라고는 안전벨트, 핸들, 가속페달이 전부인 자동차였다. 여기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순간의 도전이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졌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든다.

요란한 음악을 신호로 출발하였다. 제멋대로 내달리는 차량들이 엉켰다 풀어졌다를 반복한다.

여기저기서 충돌하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뒤에서 부딪쳐오거나 옆에서 느닷없이 밀고 들어와도 얼굴 붉히는 사람이 없다.

운전자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고 기다렸다는 듯이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받히는 것이 두려운 나는 무리에 어울리지 않고 눈치껏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었는데 누군가 일부러 뒤따라와 받는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찰라 또 다른 사람이 옆구리로 달려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음악이 꺼지면서 차들도 멈췄다. 공포조차 잊은 체 운전에 몰두했던 시간도 끝났다. 일어서서 나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러 번 받힌 충격으로 손목이 뻐근하다. 허리를 만지면서 브레이크는 없고 가속페달만 있는 '범퍼카인생'을 상상해 본다.

범퍼카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울타리 바깥으로 튀어나갈 염려가 없는 삶은 무미건조할까?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은 한번 쯤 궤도를 이탈하거나 울타리를 넘는 도발을 꿈꾸기도 한다. 범퍼카는 또 과속을 해도 괜찮다. 주변과 소리내어 부딪치기도 하고, 더러는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탄성을 질러가며 쾌속으로 질주하는 인생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범퍼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이 가속페달 하나에만 집중하며 마구 핸들을 꺾고 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 엉키고 흩어지는 장면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옆으로 눈을 돌려본다.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보지 못한 '바이킹'과 '탬버린'에 몸을 맡긴 청춘들이 매우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하늘을 찌르는 바이킹이나 전신을 흔드는 탬버린만큼은 아니라도 범퍼카처럼 살아가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뒤따라올 공포와 후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범퍼카인생은 오늘 놀이공원에서의 단꿈일 다름이다. 정신이 아찔할 만큼 짜릿한 스릴로 다가왔던 순간이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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