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는 콩과 낙엽관목으로 3m정도 자란다. 7월 이맘때 잎이 무성하고 꽃이 곱게 피며 한해 크기로 다 자란다. 붉은 보라색으로 젊은 새댁의 한복감이 될 만큼 은은하고 곱다. 화투장의 7월 홍싸리는 꽃 피는 이 시기 싸리인 것 같지만, 4월 흑싸리는 홍싸리가 그대로 말라 겨울을 넘긴 것일 텐데 화투장 그림 같지는 않다. 농촌마을의 한시대전 이야기다. 5, 60년대 어렵던 그 시절에는 땔감도 양식처럼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주로 난방용이지만 여름철 취사용도 필수품이었다. 가을과 겨울에는 솔갈비, 참나무 낙엽 등을 때지만 여름에는 풋나무를 뗀다. 봄에 새로 돋아난 각종 어린 잡목중 싸리나무가 가장 좋다. 그래서 풋나무는 주로 싸리나무를 베어온다. 생나무도 향기가 좋지만 탈 때도 향긋한 냄새가 좋다. 당년 싸리가 풋나무로 알맞고, 베어낸 다음 해 또 다시 싹이 돋아 풋나무가 된다. 풋나무는 꽃 피는 이때가 가장 오지다(오달지다). 우리나라 싸리나무는 20여종으로 싸리, 불싸리, 조록싸리, 잡싸리, 괭이싸리, 꽃참싸리, 왕좀싸리, 좀싸리, 풀싸리, 해변싸리, 고양싸리, 지리산싸리, 진도싸리 등 가짓수가 많다. 족제비싸리는 광복 후 1960년대까지 사방용으로 많이 심었다. 풋나무싸리를 지게에 한 짐 지고 와 앞마당에 널어 잘 말려야 좋은 땔감이 된다. 말리다가 장맛비를 맞히면 잎이 누렇게 변하고 떨어져 땔감 품질이 나빠진다. 그래서 장마 중 풋나무를 말리는 "나무 말미"가 있다. 오랜 장마가 잠깐 개어 풋나무를 말릴 만한 겨를을 말한다. 풋나무를 땐 아궁이에 쌓인 뽀얀 재는 좋은 잿물을 만들 수 있다. 싸리소쿠리에 볏짚을 깔아 자배기(버지기)위에 얹어놓고, 그 재를 바가지로 퍼서 소쿠리에 붓고, 재 가운데 부분을 낮게 펴서 물을 한 바가지씩 부어 잿물을 추출한다. 물이 모두 빠지면 다시 몇 번 더 떠 붓는다. 이 때 고인 미끈한 잿물은 빨래세제로 요긴하다. 흰 덩어리 양잿물(가성소다. NaOH)과 빨래비누는 그 뒷날 보편화된 세제다. 싸리나무는 윷가락으로 최고급 재료다. 엄지손가락 굵기로 바르게 자란줄기를 베어다가 말려 20cm 정도 길이로 잘라 반으로 쪼개면 윷가락 두개가 된다. 무게와 단단하기도 알맞고, 던지면 서로 부딪치며 방바닥에 땍때굴 구르며 떨어지는 모양이나 소리도 일품이다. 껍질은 매우 단단해 10여동안 윷놀이 해도 검은 자색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흰 속살과 대조가 된다. 전체가 검은색이 된 큰 '사리' 모와 흰 속살만 보이는 작은 '사리'인 윷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싸리 윷이 재미를 더욱 돋우어준다. 양봉에는 아카시아꿀 밤꿀 다음에 싸리꿀이 많이 생산돼 밀원식물로도 중요하다. 가을에 생감을 깎아 싸리 꼬챙이에 꿰어 초가집 처마에 매달아 말리면 훌륭한 곶감이 된다. 마른 황태를 꿰는데도 쓰인다. 등산길 즉석 젓가락이 된다. 나는 어릴 적 피부 버짐에 싸리목초액을 발라 치료한 기억도 있다. 마른 싸리나무 한쪽에 불을 붙이면 반대쪽에서 목초액이 뽀글뽀글 거품을 일으키며 나온다. 싸리 생활용품이 지난 시절에는 아주 많았다. 소쿠리, 지게에 얹어 짐을 나르는 발채(바소쿠리), 참솥이나 가마솥에 쓰는 싸리채반, 싸리문, 텃밭 싸리울타리 싸리비 등이 있다. 마당 빗자루 싸리비 중에는 서당비가 최고급품이다. 학동들의 부모는 잘 생긴 싸릿대 한단을 매년 훈장에게 갖다 드리고 그 회초리로 아이를 때려가며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교육용 매는 한두 개로 충분하니 그 좋은 싸리 대부분은 멋진 빗자루가 되어 시장에 나온다. 요즈음 학교 교육과 비교해보게 한다. 주위 온 산에 흔한 싸리는 땔감 풋나무 외 여러 가지쓰임이 많아 친근감이 유별나다보니 큰 사찰이나 서원 향교 등 문화재 기둥이나 대들보가 싸리나무라는 전설도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