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는 순자의 수제자다. 스승의 밑에서 어느 정도 학문을 닦았다고 생각한 한비자는 자만심에 도취되기 시작했다. 이제 충분한 학식을 쌓았으니 스승을 떠나 정치판에 뛰어들어 군왕을 보좌, 자신의 뜻을 펴고 싶었다.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스승에게 털어놓았다. 순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고사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묘당을 참관했다. 공자는 그 곳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그릇을 보고 관리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그릇이요" "이 그릇은 군왕이 살아계실 때 옥좌 오른편에 놓아두고 항상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 그릇이 비어 있을 땐 이처럼 기울어지고, 반쯤 채워지면 수평이 되고, 가득 차면 엎어지게 됩니다" 관리의 대답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향해 "그릇 안에 물을 채우라고 했다"제자들은 물을 길어다가 그릇에 부었다. 물이 반쯤 채워지자 그릇은 수평이 되었으나 물이 가득 채워지자 그릇이 엎어졌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세상 모든 것은 가득차면 엎어지기 마련이니라" 순자로부터 공자의 일화를 들은 한비자는 스승이 자신의 자만을 간접적으로 꾸짖는 것임을 알고 얼굴이 빨개졌다. 한비자는 스승에게 자신의 자만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학문에 매진했다.

순자는 스스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것과 같다면서 "영원히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자만심에 가득차면 자신이 이룬 성과에 만족, 오직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자만은 인간의 진취적인 정신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만의 폐해는 기업경영에서도 같은 이치다. '성공한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저자 짐 콜린스는 "성공에 잉태된 자만이야말로 망조의 근원이다"라며 자만을 경계했다. 한 때 세계시장을 주름잡던 소니, 코닥, 노키아 등의 몰락도 자만이 주범이었다.

20년 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38만여 임직원에게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새출발을 다잡았다. '자만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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