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께서는 늘 염려를 하셨고, 영빈(暎嬪)도 매양 경계하기를 스스로 먹는 것이 너무 박하니 늙으면 반드시 병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병이 없어 옷과 먹는 것이 후하지 않았던 보람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영조실록'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2005년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 '왕의 남자' 주인공 '공길'도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실존 배우다. 연산군에게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라며 직언했다가 곤장을 맞고 유배를 당했다. TV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長今)'은 '중종실록'에서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대비전의 증세 나아지자 국왕이 약방(藥房)들에게 차등있게 상을 주었다. 의녀 신비와 장금에게는 각각 콩과 쌀 각 10석씩을 하사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대 태조로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472년간의 기록을 편년체로 서술한 조선왕조의 공식 국가기록이다.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법률, 사상, 생활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한 국보중 국보다.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조 초기에는 편찬이 완료된 실록을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 등 지방 중심지 사고에 보관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화재, 약탈 등 분실 위험이 제기돼 사고가 지역 중심에서 험난한 산 위로 옮겨졌다. 서울 춘추관과 강화도 마니산, 평안도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등 5사고 체제로 운영 됐다. 그후 묘향산 사고는 후금의 침입에 대비, 전라도 무주 적성산으로, 마니산 사고는 인근의 정족산으로 이전됐다. 조선 후기 태백산, 정족산, 적성산, 오대산 등 지방 4사고 체제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유지됐다. 지금은 정족산본은 서울대학 규장각, 태백산본 실록은 국가기록원 부산지소에 보관돼 있다.

이처럼 실록과 같은 위대한 기록유산을 남기고 철저히 보존했던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이 경이적이다. 그런데 2007년 남북정상회단 대화록이 행방불명되다니…. 선조들 볼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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