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알 하나하나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밤하늘을 두 손 가득 받쳐들고
무성한 이파리와 줄기 숨긴 나무 한 그루
창 열어 줄 아침과 햇빛과 빗소리 기다리며
설핏설핏 잠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포도알 한 알, 두 알 딸 때마다 송이는
뿌리가 있음을 알리려고
갓 닦아낸 거울처럼 빛났고
여러 각도에서 빛을 던져대며 나의
뇌세포를 자극했던 것입니다
또 둥근 자궁을 받쳐든 꽃쟁반은
있는 힘 다해 자신의 몸을 낮추었던 것이지요
태아처럼 숨쉬고 있던 나무들
내 입 속으로 들락날락 할 때마다 지축이 울리고
사시나무 떨듯 우주가 흔들렸다는 걸
포도의 양수를 먹다가 알았습니다
<감상> 한 알의 포도를 먹으면서 유추해내는 안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인 시인 자신도 '그 양수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생명의 근원을 인식해낸다는 것이 놀랍다. 한 개체로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서지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