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보름날 경주 남산을 야간산행 한다. 구호는 늑대울음소리인 '우우~'로 한다" 이는 1995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정일근 시인과 신영철씨 등 다섯명이 경주 남산에 올라가 남산의 장엄한 분위기에 매료돼 지속적으로 찾아보기로 뜻을 갖이한 '늑대산악회'의 산행 규칙이다.

초대 회장인 정일근 시인은 달빛 속의 산행은 물론 시를 낭송하거나 창을 하고, 대금을 부는가 하면 차마시는 행사까지 달밤에 열었다. 이 때문에 처음의 울산사람 위주에서 대구나 포항, 김해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1996년 문학의 해에는 정일근, 김세원의 시 판화전이 경애왕릉 앞 잔디밭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늑대산악회가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 초기에 경주 남산을 좋아하는 선후배들끼리 다니기 시작한 산행은 인터넷이 대중화 되면서 전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늑대산악회는 회가 만들이진 이후 200회가 넘는 남산 산행을 했다. 늑대산악회는 달빛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몸을 낮추고 마음을 열어 시시각가 달빛 속에 변하는 경주 남산의 바위에 새겨진 불상의 염원을 관조하는 산행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달빛 속에 뜀박질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일명 '나이트 러닝족'이다. 시대에 따라 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요즘 도시 남녀는 클럽에 가서 춤을 추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대신 밤의 뜀박질을 즐긴다. 모임의 방법도 옛날처럼 미리 전화해서 날을 잡거나 인테넷 공지, 단체문자 발송이 아니다. SNS를 통해 번개 공지를 한다. "오늘 밤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까지, 밤 9시에 만나요"하면 금세 10여명이 모인다. 이들은 이런 저런 인사 절차나 이벤트도 없이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바로 달린다. 달밤 뜀박질이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축제'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달리기는 어렵고 지루한 운동이 아니라 일종의 해방구이자 집단 놀이가 되고 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20, 30대인데 이들은 달리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이나 현실의 무게를 잊고 오직 뛰는 것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빛 속에 산을 오르는 산악회의 진화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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