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9월 16일부터 11월 12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원효대사' 특별전이었다. 이 전시회에는 원효(617~686)가 55세 때인 신라 문무왕 11년(671) 행명사(行名寺)라는 절에서 저술한 불교 논문 '판비량론(判比量論)'이 전시됐다. 이 저술은 제목이 의미하듯이 논리적 분석을 통해 여려 종교적 의문점들을 논증식(比量)으로 타당성을 비판(判比)한 것이다.

두루마리 형태의 이 책은 1967년 일본 동경시내 길거리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엿장수가 이 책의 앞부분을 찢어 엿을 싸서 팔고 있던 것을 우연히 길을 지나던 한 학자가 거둬들여 일부분이 전하게 됐다. 이 학자가 아니었다면 원효의 판비량론은 고스란히 한낱 엿장수의 엿싸개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이 판비량론 필사본을 대여 전시한 것이다. 8세기에 필사(筆寫)한 이 책은 비록 원본의 8분의1 가량 밖에 남아있진 않지만 원효의 저술을 베낀 세계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관심꺼리였다.

무엇보다도 이 필사본에는 고대인들이 한문 경전을 읽을 때 그 뜻을 이해하거나 독송(讀誦)을 위해 달아 둔 읽기 문자인 '각필문자(角筆文字)'가 확인된 것이어서 국어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04년 일본 히로시마대 고바야시 요시노리 교수는 이 '판비량론'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각필문자를 연구한 결과 일본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했다. 당시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에 대해 많은 일본 학자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판비량론 필사본 각필은 훼손이 심해 명확히 판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고바야시 교수가 신라시대에 만들어져 일본으로 전해진 불교경전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가타카나의 기원으로 보이는 각필문자 360개를 확인했다고 2일 NHK가 보도했다. 일본 주류 학계에서는 가타카나가 서기 800년 이후 한자의 일부 획수를 줄여 일본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신라시대에 전해진 불경에서 가타카나의 기원인 각필문자가 확인돼 일본 글자 가타카나가 신라서 유래했다는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위대한 한글은 물론 일본 가타카나도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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