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2~3번 한자리에 모여 조상 산소 돌보며 가족애 다지면 백마디 말보다 값진 효교육 될 것

양동주 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조상님들을 모신 묘에 자란 잡풀들을 자르거나 정리하여 산소를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말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이발을 하여 단정한 모습으로 가꾸는 것과 같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절에는 조상님들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벌초를 하는 시기는 봄,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으로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님들을 포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를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조상님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일정지역에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일가친척이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1980년대~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하게 되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기는 쪽으로 넘어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정도로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벌초를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전문업체도 많이 늘어서 도시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편이다. 물론 직접하는 것이 자손된 도리라고 하면서 벌초할 시기만 되면 일가친척을 소집해서 모두 다 같이 함께하는 노동을 체험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대대로 돌아가신 분을 매장하는 장례가 이어지고 있으나 과거처럼 선산에 모시기보다는 근래에 들어 가까운 공동묘지에 모시는 경우도 많고, 아예 화장 후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 외에 각종 다양한 장례방법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조상의 산소를 관리함에 있어서 남의 손을 빌리는 것 보다는 후손들이 일 년에 2~3번 한자리에 모여 단합된 가족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말로 하는 효 교육이 아니라 실천하는 효 교육이 되도록 부모 세대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화번호 (011-822-0787)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