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고 가난했던 기억들 남을 배려하는 성장판 역할 추억 많은 사람이 진정 부자

박모니카 수필가

회상(回想)은 좋은 것이다.

그 당시의 오염된 공기는 이미 빠져 버리고 독기도 나가버린 후여서 보들보들한 스토리만 남게 된다. 특히 초라하고 가난했던 시절은 뼛 속 깊은 슬픔까지 달달하게 양념되어 회상이 더욱 맛있어진다. 고달프고 서러웠던 기억은 어느 새 남을 배려하게 하는 마음자리를 마련해주는 성장판이었던 것도 알게 된다. 어쩌면 회상은 나이 먹는다는 사실을 기쁘게 해주는 상패와 같은 것은 아닐 지.

그래서 부자는 물질이 아닌 추억거리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발동하고 괜스레 즐거워지는 까닭이 분명 있긴 하다.

나에게도 지나 간 날들을 회상할 이야기꺼리가 제법 있는 셈이다. 그 중에 하나를 끄집어 내 볼까.

곰삭은 흙벽에 대충 엮어 만든 허름한 집에 세 들어 산 적이 있었다.

가난한 새댁 시절이었다. 가게 문만 열면 길 건너 선착장과 어판장이 있어 항상 갯내음이 물컹거렸다. 몇 자죽만 떼면 바로 바다였다.

그 날은 몹시도 바람이 불었다.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숫제 바람에 떠밀리 듯 들어 와서 '이렇게 힘 센 샛바람은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퍼런 엉덩짝을 내놓으며 까르륵거리던 세 살, 네 살배기 두 아들 녀석도 그 날은 아예 이불 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마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날짐승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졌을까. 길에는 인적마저 끊어진 상태였다. 전기가 끊겨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전화도 이미 불통이었다. 묶인 배들이 부딪혀 서로를 상처내고 있었고 파도가 어판장 까지 들이쳤다. 바다는 거친 샛바람에 못 이겨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약국 문을 닫고 초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들었다. 억지 잠이 오지 않은 두 아들 녀석들의 소곤대는 소리 '행님아, 무섭나?' '아아니.' '그라믄 와 이불을 자꾸 땡기노?' '안 무섭다카이. 이불 안 덮는다. 봐레이' 호기에 찬 큰 녀석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그 순간, 갑자기 목청이 터져라 괴성을 질러댔다.

'엄마아, 지붕 날아 간데이'

설핏 잠이 들었던 우리 내외가 누운 채로 동시에 눈을 떴을 때는…. 세상에,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정작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우리 집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 옆 집 세탁소 장독대를 들이쳐버린 것 이었다. 그 뿐인가 그 파편이 뒷집 큰 유리창까지 박살내버렸다. 뒷집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마치 폭발음 같았다. 장단지 안에 고추장이 터져 나오고 간장물이 흘러 넘치고 묵은 김치가 널브러졌다. 아수라장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굉음에 놀라 뛰어 나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새댁을 위로나 하듯이 동네 사람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치워주기 시작했다.

'고추장 비빔밥 맛있게 무쳐졌네그랴. 어서 숟가락 가져 와 떠 먹게.' 우스개 소리를 하며 밤 늦도록 자기 집 일처럼 치워주는 이웃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몇 년 먹을 먹거리를 작살내버려 너무 미안해하는 나에게 옆집 세탁소 아줌마는 '우짜것노 샛바람이 한 짓인데' 했다.

샛바람이 한 짓 때문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섬처럼 외로워하며 정 붙이지 못한 나를 동네 사람에게 다가가게 했다. 이웃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한 것이었다. 지붕이 날아 가버린 우리 가족에게는 초롱한 별 빛이 수놓여진 하늘을 이불 삼고 초승달을 베게 삼아 서로를 꼭 안고 잠들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해 풍어로 만선의 기쁨을 안겨 준 것도 그 샛바람이 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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