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조 조광윤은 나라를 세운지 얼마 안돼 근심에 빠졌다. 창업공신들이 지방에서 상당한 무력을 갖추고 활개를 치고 있어 실세들의 제거가 급선무였다. 병력을 앞세우면 배반할 우려가 있고, 그냥 두면 언젠가 그들의 칼끝이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광윤은 '식사정치' 카드를 쓰기로 했다.

어느 날 조광윤은 식사자리를 만들어 공신들을 불러모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황제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신하들은 "왜 그러냐?"며 황제에게 물었다. "요즘 잠못이루는 밤이 많아, 물론 경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들의 부하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주인을 황제로 옹립할까봐 걱정이오." 황제의 대답에 식사자리는 좌불안석, 공포의 자리로 돌변했다. 반역의 가능성을 황제가 먼저 경고한 것이었다. 그 다음 날 아침, 공신들은 황제 앞에 무릎은 꿇고 "이제 저희들은 나이가 들어 군사를 지휘할 능력이 없습니다."면서 병권을 황제에게 반납했다. '술 한 잔으로 병권을 풀게 하다(杯酒釋兵權 배주석병권)'의 성어는 이 고사에서 나왔다.

사람이나 동물은 식사를 나누면서 착해지는 버릇이 있다는 것. 배곯음을 면하면 생리적으로 상대를 해칠 생각을 안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치국면의 타개를 위해 식사정치를 활용하는 예는 고금의 역사에서 많이 본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식사정치'가 자주 논란거리가 됐다. 탄핵정국의 반사이익으로 여당이 총선서 승리하자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인사들과 연일 오찬, 만찬을 가져 식사정치라는 말이 무성했다. 야당은 "청와대가 매일 식탁정치를 해 청와대가 열린우리당의 구내식당이 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노대통령은 이 같은 청와대 식사정치를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잭슨의 '부억내각(Kitchen Cabinet)'에 비유,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식탁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 바란다."고 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10대그룹 총수들과의 오찬 간담회서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강조하고 총수들로부터 하반기에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겠다는 회답을 받아내 식탁정치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정국경색 국정난제 등의 해결을 위한 식사정치를 자주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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