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심야에 발생한 대구 남구 대명동 LP가스 연쇄 폭발사고로 유능한 경찰관 2명이 목숨을 잃고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내일이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다.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이후에도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사 사고가 잇따라 각종 안전 대책을 마련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이번 대명동 사건으로 그간의 대책이 전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학물질 취급 업체들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고 행정당국의 대응 또한 아주 소극적이란 지적이다.

위험물 취급 시설인 LP가스 판매업소와 페인트 가게 등이 무분별하게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렇다할 제재가 없다. 이 때문에 대구 동구 지역 등은 주민들이 평상시에도 큰 불안감을 갖고 살고 있다. 대구 전역에는 LP가스 충전소와 판매소가 각각 52곳, 311곳이나 흩어져 있다. 이들 위험물 취급 시설들은 대부분 배달 등 영업의 편의를 위해 주택가 도로변에 버젖이 자리잡고 있어서 '도심의 화약고'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위험천만한 일로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전혀 시정이 되지 않는 문제다.

특히 LP가스충전소에 비해 인허가 요건이 덜 까다로운 LP가스 판매소의 허점이 많다. 고위험 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사무실과 용기저장소만 갖추면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어서 대부분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대구의 경우 동구에만 50곳이 있고, 북구 49곳, 달서구 48곳, 달성군 44곳이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 구군에는 대략 한 블럭 건너 한 곳 정도의 판매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달서구에는 다른 구군에 10개 안팎의 LP가스 충전소가 있는데 비해 무려 34곳의 충전소가 있어서 화약고나 다름없다.

시너와 같은 고인화성 물질을 취급하는 페인트가게도 주택가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페인트업종이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위험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소방당국에 별도의 신고와 안전점검 등을 받지 않아도 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위험물질 안전관리법에는 일정 허가량 이상일 경우 관리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소방당국의 관리를 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허술한 위험물 관리 기준도 정비하고 관련 법규의 재·개정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대구의 경우 올들어 환경법규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사업체 수가 8월말까지 119곳이나 된다. 대구시에 등록된 유독물 취급업체 수가 386곳인 것을 감안하며 이는 업청나게 많은 수다. 이번에 사고를 낸 대명동 LP가스 판매소의 경우 남구청이 시설 존재 사실조차 몰랐다는 보도다. 위험물 취급 업소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 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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