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력 있기로 유명한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자신의 죽어서 묻힐 자리까지 예언했다. 지기삼사(知幾三事)중 한 가지다. "선덕여왕은 아무 병이 없는데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 곳이 어딘지 몰라서 왕에게 물었더니 왕이 말했다. '낭산(狼山) 남쪽 이니라' 그 날이 되자 왕은 과연 그의 예언대로 세상을 떠났다.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냈다. 10여년이 지난 뒤 문무왕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었다. 불경에는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다. 그제야 여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이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낭산은 불교의 이상세계가 구현된 산으로 볼 수 있다. '도리천'은 불교 우주관에서 분류된 하나의 세계로 신라인들이 갖고 있던 불국토사상을 신라의 땅에 구체화한 것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선덕여왕은 신라문화사에의 핵심적 유산을 남겼다. 현재 복원이 추진중인 황룡사구층목탑을 비롯해 분황사, 첨성대, 영묘사 등 빛나는 문화유산을 남긴 여왕이다.

낭산의 높이는 해발 115m에 불과한 야산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동남쪽으로 보이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자리잡은 산이다. 신라시대에는 삼사 가운데 대사를 받들던 중악(中岳)으로 서라벌의 진산(鎭山)이었다. 삼국사기 실성왕 12년(413)의 기록에는 "왕이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서린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이니 응당 이곳이 복지(福地)다. 이제부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라."라고 명했다. 그 이후 선덕여왕의 능이 있는 낭산 남쪽 지역에 신령이 노니는 심유림(神遊林)이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금(琴)의 명수인 백결선생이 세속을 초월해 청빈을 즐겼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고택지인 독서당도 있다. 뿐만아니라 신라 최고의 조각가인 양지스님이 사천왕사에서 실력을 뽐낸 곳이기도하다.

경북일보가 아직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 '낭산'을 대상으로 오늘과 내일 경주에서 심포지엄과 답사행사를 갖는다. 의미가 큰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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