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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가을 시(詩)

단풍으로 물든 내연산, 푸른 평원의 꿈 장기읍성, 포항-아름다운 가을의 절정

박상호 시인·수필가 등록일 2013년10월14일 00시26분  
박상호 시인·수필가

누이야, 포항의 가을은 절경이고 절창이다.

능금 꽃빛 출렁이는 상옥, 하옥의 산골/궁노루 산울림 타고 꼭두방재 넘으면/새색시 볼 마냥 다홍으로 타는 단풍/이산 저산, 온 산에 알록달록 가을이 물결치면/"고추 10근, 쌀 반포, 밤 시되 부친다" 라고, 비뚤 비뚤 갈겨쓴/어머님의 가을편지/를 죽장 두 마리 삽지거리에 뒹구는 갈대우표로 부친다.

흐르는 냇물 속 뽀얀 발등위로 송사리 꼬물꼬물/맑은 사랑 꿈꾸던 기계 천방 둑/살결 같은 능금이 익어/그 찰진 단맛의 기억이 억새 춤 바람결에 흩어지면/나는 바람이 되고 너는 꽃이 된다/꽃 중에서도 물망초 꽃/죽어도 잊지 못하는 맑은 순정의 의미가 된다.

향로 불타듯 내연산 산자락 단풍 들면/겸재의 가슴 시린 사랑/연산폭포에 곤두 박 질 한다/지상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천길 절벽 위를 뛰어내리는 저 아찔한 사랑/사랑이 뭐 길래, 진짜 사랑이 뭐냐고?/저산은 집착에서 벗어나라/잊어버리라고 지친 나그네의 어깨를 떠민다.

흰 구름 떠있는 비학산에 학이 울면/천년 고찰 법광사 귀촉도 성가시게 우는 밤/댕그랑 풍경소리 적막을 깨면/뒷담을 타넘어 떠오르는 초승달/속세에 두고 온 초승달 같은 딸아이 생각에/여승이 운다/가을이 따라 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맑은 샘 흘러/황금 들녘을 이루는 흥해 벌/밀짚모자 푹 눌러쓰고 부끄러움 달래며/대통령의 꿈을 먹던 소년이 맨발로 달리던/새참 먹는 농부의 모습이 만종으로 완성되는/바다로 흥한다고 흥해라 했던가?/그 말 딱 맞게 신 항만의 깃발 더 높이 나부끼는 포구의 가을이 더없이 아름답다.

청하라는 마을에 천희/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아직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칠 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바다에서 피리소리로 들리는 곤 했다. 지금도 바람에 날리는 나의 자발(自髮)에 천희가 헤엄친다. 인연의 수심 속에 흔들리는 해초잎사귀/-박목월-, 천희가 가을바다에 젖고 있구나. 천희가 울고 있다.

안개 머금은 운제산은 언제나 고즈넉하다/술지게미 안치는 산여주막 주모의 살찐 궁둥이/나그네의 술맛을 당기게 하는데/오호라 술이 익으면 사랑도 익으리/산도 주모도 나그네도 취한 한나절/주모는 열 몇 해 동안 달고 다닌 과수댁의 딱지를 떼었으니/경사로다 경사로다/가을이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다.

우거진 덤불속 산 다래를 따다 가면/이끼긴 돌들이 반듯이 누워 푸른 평원의 꿈을 꾸는 장기읍성/수심은 돌로 눌러 놓아도 또다시 일어나고/꿈길은 안개같이 희미하지만/그러나 장기는 낙원이다/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는 곳/이 땅의 명망 있는 인재들이 낙향과 귀양, 유배로 얼룩진 역사의 수례가 탈 탈 탈 굴러가고 있다.

먼동 트는 새벽녘 고운물살 가르며/해가 뜬다. 한반도가 밝아온다/조국의 아침이 시작되는 곳/부릅뜬 기상이 예사롭지 않는/말달리는 선구자의 기백이 푸른 동해바다로 내달리는/우리 땅의 소중한 의미와 시대의 가르침을 배우는 곳/너와 나의 고향 구룡포와 호미곶에 가을 아침이 찬란하다.

누이야, 우리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 했던가? 고향의 바람과 돌, 풀 한포기가 우리를 어루만져 주었기에 포항의 가을은 이렇게 아름답게 익어가고 그 풍경들이 너와 나의 마음에 詩가 되어 물결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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