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란 이름의 사각지대에서 폭력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이웃 살피는 관심·노력 절실

최아영 경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가정폭력에 관한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낡은 법언이 되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행을 더 이상 남의 가정사가 아닌 국가와 사회에서 적극 개입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할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우선 가정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 성격을 띄고 있어 재범율이 매우 높은 범죄중의 하나이고,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암수범죄가 존재한다.

가정폭력 재범율은 2010년 21.7%에서 2012년 40%에 육박하는 등 최근 3년간 지속 증가했다.

또한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 변화로 예전보다 신고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피해를 입고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8.3%에 불과해 실제 피해는 더욱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정폭력이 끊이지 않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처럼 피해 사실을 이웃이나 경찰, 상담센터에 알리기를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하고 있다.

다음으로,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정폭력은 모든 폭력과 범죄의 씨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에서 폭력을 반복적으로 목격한 자녀들은 결국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폭력을 개인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취할 수 있는 정당한 반응으로 받아들인다.

지난 8월 실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형자 480명을 조사한 결과 살인범과 성폭력범 3명 가운데 2명꼴로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을 예방하면 강력범죄 또한 예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수형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른 경험이 4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비극의 대물림이라 할 수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처음에는 가해자를 증오하거나 폭력의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는 등 정서적 불안을 보이다가 차츰 가해자의 행동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정당화되고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아버지와 동일시되어 결국 폭력적인 행동을 답습하게 된다.

이러한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우선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모두가 가져야 한다. 가정폭력 체감안전도 조사에서도 일반국민과 전문가 모두 가정폭력에 불안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예방교육 부족 및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목했다.

가해자는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에게 행사하더라도 엄연한 범죄임을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피해자는 창피해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담소나 경찰에 신고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가정폭력 엄정대응과 피해자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에도 현장출입조사권, 긴급임시조치권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러한 법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정과 주취상태 행위자 보호조치 규정 등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

경찰에서 가정폭력 인식전환교육과 더불어 현장대응능력강화를 위한 직무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가정폭력 근절 정책의 일환이다.

끝으로, 이웃과 지역사회 모두가 가정폭력을 단순히 한집안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을 갖고 관심을 가져야겠다.

가정이라는 이름의 폭력 사각지대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내 주변부터 살피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가정폭력 근절의 희망은 싹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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