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판단은 오류투성이, 제대로 보려는 훈련을 통해 사물의 본질 깨달을 수 있어

신재영 위덕대 교육대학원 교수

'학교2013' 이라는 TV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해설이 없어도 공감과 감동을 낳는 시이다.

구태여 하나의 교훈을 끌어낸다면, 우리는 평소 대상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대상과의 관계에서 부조화와 불협화음, 왜곡을 겪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평소 느끼던 삶의 삭막함 그 밑바닥에는 우리가 늘상 하고 있는 '피상적으로 보기'가 놓여 있음을 그 시가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대상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일까? 현상학이라는 학문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판단'이라는 기능을 그 속성으로 수반한다. 판단은 오랜 기간 쌓여온 온갖 '콩깍지'(신념체계)중 일부가 작동하여(on) 이루어지는데, 판단이 이루어지면 그 좋고 나쁨을 떠나 만족감이 생기면서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일련의 의식작용이 종료된다. 그리고는 다른 대상으로 의식작용이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방식은 우리가 늘상 하고 있는 활동이지만 대부분 피상적이고 오류투성이의 인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현상학은 우리가 제대로 대상을 파악하려면 판단을 '유보'(중지, 괄호치기)하라고 가르친다. 판단유보 혹은 중지를 위해서는 작동하는 콩깍지를 꺼야(off) 한다. 콩깍지를 끄면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자연히 만족감도 생기지 않는다.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다른 대상으로 의식 전환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다시 다른 콩깍지를 켜서 동일 대상에 대한 판단을 시도하게 된다.

또다시 판단-판단중지의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대상과 관련된 온갖 콩깍지(선입견)들을 끄게 되고 점차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시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 보라는 것은 곧 판단을 유보하라는 현상학적 가르침의 요체를 일상의 용어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풀꽃'과 현상학의 가르침의 차이는 나태주 시인은 피상적 보기로 인해 잊고 있던 대상의 긍정적 측면의 실재를 새삼 친근하게 일깨워준 것이고, 현상학은 그러한 긍정적 판단조차도 넘어선 본질(존재 자체)을 직면하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풀꽃'과 현상학이 전해주는 제대로 보기의 궁극적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영적 지도자 반열에 든 톨레(Eckhart Tolle)의 지난 체험을 통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시절 혹독한 정신적 시련 끝의 어느 날 밤, 톨레는 근원적 물음과 함께 깨달음을 얻고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는데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습니다… 커튼을 통해 스며든 햇빛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방이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방금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싱싱하고 신선했습니다. 연필이나 빈 병 따위를 하나씩 집어들고 들여다보면서, 그 활기찬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톨레의 체험을 두고 볼 때,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깨달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우리는 적어도 왜곡이나 삭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풀꽃'과 현상학의 가르침을 바탕삼아 제대로 보기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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