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한켠 낡은 잿빛 나무판자에서

옹이 하나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고

아이가 물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그 구멍에서 파꽃이 피었다 지고

분꽃이 열렸다 닫힌다

쪼그리고 앉아 늙은 땜쟁이가

때워도 새는 양은냄비 솥단지를 손질하고

겨울의 궤도에 든 뻥티기가

등이 시린 이들 사이로 행성처럼 돈다

꿈이 부풀기를 기다리며

코로 쭉 숨을 들이키는 이들

홀쭉한 자신의 위장을 닮은 자루를 들고 서 있다

이승의 끝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나는

아이의 그 크고 슬픈 눈과 마주친다

나는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그 구멍으로

저켠 길이 굽어드는 곳까지 내다본다

누가 잠자리에 들 듯 목관에 들어가 눕는다

뚜껑이 닫히고 어둠이 쿵 쿵 못질하는 소리

문득 옹이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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