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에 갔지 비오는 일요일 오후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온 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내고 있었어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그 푸른 물속에 섞이고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나는 푸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섹스폰의

주둥이 그 깊은 샘을 바라 보았지 백두산 천지처럼 움푹

패인 섹스폰 속에서 하늘 한자락 잘게 부수며 맑은 물이

흘러 나오고 아아 두만강 푸른 물에 님 싣고 떠난 그 배는

아직도 오지 않아 아직도 먼 두만강 축축한 그 섹스폰

소리에 나는 취해 늙은 연주자를 보고 있었네 은행나무

잎새들이 노오랗게 하늘을 물들이고 가을비는 천천히

늙은 몸을 적시고 있었지 비는 그의 눈을 적시며 눈물처럼

아롱졌어 섹스폰 소리 하염없을 듯 출렁이며 그 늙은 사내

오래도록 섹스폰을 불고 있었어

<감상> - 파고다공원이 온통 물의 세계, 물의 이미지로 넘쳐나고 있다. 비오는 일요일에다가 섹스폰 연주자가 불어대고 있는 노래도 '두만강 푸른 물'이다. 문제는 가을비에 온몸이 젖도록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제끼는 늙은 색소폰 연주자의 기다림에 지친 한 많은 삶이 아닐까. 그 늙은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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