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마루 둘러쳐진 구름 위에 올라앉아

피리 부는 한 소년이 있었다

끝없이 풀려나오는 피리 소리는 이리저리

뒹굴며 바위의 침묵을 깨뜨리고 땅속 나무의

뿌리를 흔들어 깨웠다 하늘을 날던 새는

그 소리마저 훔치기도 했다 산 아래 노을 번진

바닷속까지 그 소리는 스며들고

밤하늘의 별도 무너졌다 일어서곤 했다

연거푸 神의 귀울음을 쏟아 내고 있었다

영혼의 소리 모두 풀어낸 텅 빈 피리구멍 속에

이제는 타 버린 흰 재만 고요히 쌓여 있었다

소년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몸은 채색한 구름빛 속으로 자취 감추고

형형한 빛의 씨앗들만 그 자리에 남았다

오고가지 않는 청솔 가지 위에도 소년의

끊이지 않는 영원한 피리 소리는 얹혀 있었다

<감상> - 이 땅의 수많은 시인들이 시를 쓰지만 좋은 시를 빚어내기란 쉽지 않다. 미당의 머리속에 들어가 그대로 손놀림만 하면 멋진 시가 되어 나오기에 귀신이 대신 써주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접신(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찬사를 한몸에 받아온 터이다. 이 시가 바로 신통한 피리 소리 다름 아님을 읊고 있다.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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