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혼령에게 음식을 바치고 추모하는 제사는 설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 외에 기제(忌祭)와 시향(時享)이 있다. 기제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집에서 지낸다. 사대봉사라 해서 부모에서부터 위로 고조부모까지 4대만 지낸다. 기제로 받들지 않는 5대조 이상은 음력 10월에 무덤에서 제사 지내는데 요즈음이 그 시기다.

명문가에서는 대개 집 안의 사당에 조상들의 신위를 모셔놓았다가 기제 때가 되면 신위를 가져다 젯상 위에 올려놓고 제사지내고, 끝나면 다시 사당에 안치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기제 대상에서 시향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면 사당에 모셨던 신주를 해당 조상의 무덤 앞쪽에 묻는다. 신위를 묻는다 해서 이를 '매위(埋位)'라 한다. 사당에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면 한지에 지방(종이에 써 모신 신위)을 써서 땅에 묻는다.

그러나 국가에 큰 공이 있거나 학식과 덕망이 높은 분과 배우자는 특별히 나라에서 계속 기제를 지내도록 허락했는데 이를 불천위(不遷位)라 한다.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를 말한다. 영남지역은 우리나라 유교의 산실답게 불천위가 가장 많이 모셔져 있다. 안동 50위, 경주 8위, 성주 3위, 고령 1위, 현풍 2위가 조사됐다. 수백년이 지나도 후손과 후학들이 신위 앞에 머리를 조아려 업적을 기리는 주인공들이다.

불천위 반열에 오른 인물은 충과 효의 실천이 남달랐던 사람,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한 사람, 전쟁에 참전해서 나라를 지키는데 몸을 던진 사람,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한 사람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 한 삶을 산 위인들이다. 헛된 욕심을 부리거나 명예와 권력을 탐하지 않았던 불멸의 삶을 산 불천위 인물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난 8일 안동에서 '불천위, 만리를 가는 사람의 향기'라는 주제로 종가 포럼을 열었다. 불천위와 제례문화의 다양한 원형을 소개하고 전승 보존, 활용 방안 등을 토론했다. 경북도가 종가 문화를 한국의 대표적 고품격 한류(韓流)자원으로 가꿔 나가기로 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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