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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리

비움·무욕 소리로 가득, 우리 마음도 소리로 채우자, 겸허·감사·나눔소리 어떨까

박상호 수필가 등록일 2013년11월19일 20시52분  
박상호 수필가

포항의 가을은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저 감동으로 휘몰아가는 억새풀 헝컬어져 금빛으로 출렁이는 흥해, 기계, 신광 저 황금들판의 물결은 아름답다 못해 오히려 찬란하다. 가을단풍은 아름답다 못해 애처롭다.

귀머거리 딸을 남의 집 재처(再妻)로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새색시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눈물과 피로 수놓듯이. 아! 문득 가슴을 치고 가는 종소리, 그 가을의 소리에 딸아이는 일어나, 듣지 못하는 아픔을 가혹한 형벌이기 이전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이라면 오직 내 가슴에 종을 울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가을의 소리! 우리의 온전한 정신이 깨어있는 생명의 소리이자 기도와 사랑, 용서와 참회의 소리이다.

초록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어버린 텅빈 들녘에 서있는 저 허허로운 허수아비의 모습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고향을 목숨처럼 지키는 저 당수나무의 의연함을 보아라. 나무는 낙엽이 떨어지는 그날부터 줄기는 물을 끌어당기고 껍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잎은 햇볕을 쪼이고 또 다른 생산과 창조를 준비하여 꽃피우는 다가올 봄의 설레임에 가슴 벅차다.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리고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벌판에 앉아서 석양이 지는 소리에 귀 기울려 보아라. 이 세상에 인간이 자신의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우겨보고 기를 써도 누구나 무소유로 왔다가 무소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유에 집착한다. 모두 다 부질없는 일이다. 지금 억만금을 쌓아두고 가둠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재벌가의 어리석은 허상이 그것을 극명히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억새와 갈대 어우러진 강가에서 저 무심으로 흘러가는 울음 우는 가을강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소리 없이 흐르면서 기나긴 침묵으로 우리를 낮추고 겸손하라고 순리를 따라 행하라고 가르쳐 준다. 상선약수(上善藥水), 물의 흐름을 따라감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우리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아닐까.

인간을 아름답게 요인은 거짓으로 치장한 허영이 아니라 진실로 베푸는 사랑과 나눔과 배려이며, 행복은 돈과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감동에서 온다. 행복의 바이러스인 감동은 거창하고 웅장한 것이 아니다.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데서, 작은 성취를 위하여 열성을 다하여 그 성취가 이루어 졌을 때,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공정한 가치를 위하여 노력할 때 느끼는 마음의 파장, 기분,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다.

가을은 질서와 순종의 소리, 비움과 무욕의 소리로 그득하다. 그대와 나 우리들의 마음의 소리는 무슨 소리로 채워볼까.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소중한 신호는 겸허와 겸손이라 했듯이 겸허함의 소리, 겸손함의 소리, 고마움과 감사의 소리, 나눔과 배품의 소리로 가득 채워 봄이 어떨까?

낙엽이 지고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는 우리내 인생의 소리와 같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갈래머리 여자 선생님이 쳐주던 가슴 따스한 풍금소리처럼, 은은하면서 때로는 웅장하고 장엄한 소나타 같이, 아니 그 소리는 어머님이 새벽마다 장독대에 냉수 물 떠 놓고, 내 목숨은 먼저 거두어 가더라도 제발 자식들만은 제발 무사하게 해달라는 당신의 간절한 기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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